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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백운리 백운사부도(靑山面 白雲里 白雲寺 浮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백운리 백운사부도(靑山面 白雲里 白雲寺 浮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8. 21:32


백운사 부도로 불리우며 청산면 백운리 백운사에 있다.

백운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우측으로 보이는 요사채 뒷쪽에 부도밭이 조성되여 있다.



백운사 부도는 화강암으로 제작되였으며 부도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원형에 가까우며 단아하고 아름답다.

새로 조성된 기단석위에 둥근 원형의 몸통부분을 올리고 그 위에 머리부분인 옥개석을 올려놓아 비와 눈이 맞지 않도록 하였다.

본래 청산면 명티리 옛 절터에 있던 것을 백운사 경내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백운사 부도가 있던 청량사는 청산면 삼방리 장노골 천둔사 계곡에 있었다.

규모가 제법 큰절로 추정이되며 주변에서 석탑의 부재와 부도의 잔편이 발견되였다.

절의 이름은 시중동국여지승람에 언급되여 있고 여지도서 에는 절이름을 신흥사로 바꾸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삼방리 장노골에서 2키로 정도 산길을 오르면 천여평의 평지가 나오는데 그 일부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이된다.





청산면 삼방리 에는 부도가 발견되였던 청량사 터를 아직도 법당골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려 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청량사는 이제는 그 흔적마저도 찾을수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직도 그 터가 남아있고 기왓장과 석탑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또한 사람들의 흘러간 이야기인 듯 하다. 




백운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1460년경 조선 세조 때 청산현감이 이 마을의 경치가 좋아 동헌 위쪽에다 정자를 짓고 당대의 문장가이며 영중추부사를 지낸 김수온선생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던바 “청산에는 백운이 없는 데가 없고 백운이 있는 데는 청산이 없는 데가 없다. 그리고 옛사람의 시에 청산은 백운밖에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라 하였으니 백운정이라 함이 좋겠다.”하여 백운정이라 이름 지었고 마을이름도 백운리라 하였다.


백운리의 절경은 백운리 뒷산인 덕의산에 수백 마리의 백학(白鶴)이 무리를 지어 석양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장관을 백운귀학(白雲歸鶴)이라 하여 청산팔경 중 제2경으로 노래한 옛 사람들의 정취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백이는 고씨, 박씨, 이씨가 마을을 형성했기에 고박이로 했다가 변천하여 고백이가 되었고, 중골은 백운리와 교평리 중간에 있어서 중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배맨바위(백골재)는 마을 위 덕의산 중턱에 위치하고 옛날 대홍수에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배를 맸다하여 배맨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한뎃마당은 마을중앙에 위치하여 널따란 광장을 이루고 있어 한뎃마당이라 부르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식수 및 빨래터로 이용하여 왔다고 한다. 고백이고개(만월령)는 마을뒤 만월리와 백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에는 주요교통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