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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장위리 영신마을유래비(靑山面 長位里 迎神마을 由來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장위리 영신마을유래비(靑山面 長位里 迎神마을 由來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10. 07:26





영신마을 유래비라고 쓰여있다.

아직도 새색시티를 벗지 못한 수줍음이 마을 유래비에서 묻어난다.

이리 저리 사진기를 누르는 모습을 보며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다가오셔서 말 참견을 하신다. 


"그걸 뭐 할려고 찍어?" 

 

"안녕하세요 제가 좋아해서요"라는 말외엔 달리 할말이 없다.



마을 쉼터인 정자와 함께 새로 단장하여 유래비를 세워 놓았다.

옥천군지에 의하면 청산면 장위리 영신마을 뒤쪽 언덕진 능선에 수천평의 밭이있고 이 밭 가운데 탑의 일부와 조각들이 보인다. 절의 이름이나 창건과 폐사등에 관하여는 전하는 기록이 없으나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영신이라고 부르고 있어 영신사가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탑의 부재나 기와들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한 절로 추정한다.

남아있는 탑부재는 옥신석1개와 옥개석 1개로 옥신석에는 전후면의 양쪽에 기둥을 만들고 가운데 좌불상을 양각하였다고 기술되여 있다.



이 곳의 지명이 장위리라 부르게 된 것은 국화산(菊花山)과 두루봉이 뻗어내려 장사래(長沙來) 배터마을이 이루어진 곳으로 장위리에서 한곡리까지 비산비야(非山非野, 낮은 산줄기)가 길게 있다하여 긴 장(長) 자리 위(位)자를 써서 장위리(장사랫들)라 하였다.


음지말 뒷산은 매봉재라고 하며 꿩이 9개의 알을 품고 있어 구치라고 하는데 매가 그것을 노리고 먹을 것을 찾고 있다고 해서 매봉재라 전해진다. 양지말에는 전주유씨가, 음지말에는 경주김씨가, 영싱이에는 밀양손씨가 주로 모여 살았다. 안산김씨가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 터전을 잡았다고는 전한다.


영신이 마을 뒤에는 신라 때의 절터(迎神寺, 영신사)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음지말, 양지말, 영싱이 등이 있다.


영신마을 유래비는 2013년에 건립하였다.



옥천군지와는 달리 마을유래비에는 그나마 전해지던 탑의 부재도 몰지각한 누군가에 의하여 사라지고 자금은 어디에서도 절의 모습의 자취를 찾을수는 없다. 그 옛날 영신사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옹달샘과 탑의 존재를 알려주는 탑거리라는 지명만이 쓸쓸한 영신사터를 지키고 있다.

옥천군지가 쓰여질 때까지만 해도 영신사의 흔적은 남아 있던것으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