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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교평리 관찰사겸순찰사 신억 영세불망비(靑山面 校平里 觀察使兼巡察使 申檍 永世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교평리 관찰사겸순찰사 신억 영세불망비(靑山面 校平里 觀察使兼巡察使 申檍 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15. 11:38


신억은( 1805-1875) 평산인으로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신억의 본관운 평산이며 자는 경춘(景春)이다 조부는 신종(申綜)이고 부는 명구(命求)이다.

장인은 흥성대원군인 이하응의 아바지 남연군 구(球)이므로 흥선대원군과는 처남 매부지간이며 고종에게는 고모부가된다.

1834년 인릉참봉을 시작으로 1844년 금부도사를 지내고 1847년에 청안현감이 된다.

그 후에 평창군수,청풍군수,문천군수등을 지내고 1863년에 고종등극후 청주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1864년(고종 1) 좌의정 이유원()이 조대비()에게, 치적이 뛰어나 수령직을 맡을 만한 인재 3인을 추천할 때 전 문천군수 신억도 함께 추천되었다.

공충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청주 상당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고, 부패한 향리의 숙정과 철저한 재결() 조사를 통하여 선정을 하였다.

그 해 교리 강장환()이 영동군수의 부정을 무고한 사건이 일어나 강장환은 유배되었으나, 신억은 외신()으로서 내신()의 처벌을 논하였다고 하여 견책당하였다. 뛰어난 치적으로 좌의정 김병학()에 의하여 임기 이후에도 연임하였다.

그 뒤 또 관아의 재정을 비축하고 군기를 보수한 공으로 가자()되었다. 1866년 체임시 남연군() 묘의 제사를 주관하고 제문을 찬진()하라는 왕명을 받았다. 1873년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효정()이다. 신억 [申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산대교옆에 작은공원에 여러비석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청산면내에 흩어져 있던 여러비석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겸순찰사신공억영세불망비(觀察使兼巡察使申公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다.

비석의 상태는 양호하나 석화등이 피여 글씨를 잘 알아볼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