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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대성리 면장원용구부인영산장씨시혜비(靑山面 大成里 面長原容九夫人永山張氏施惠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청산면 대성리 면장원용구부인영산장씨시혜비(靑山面 大成里 面長原容九夫人永山張氏施惠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2. 15. 06:42





비석의 전면에는 전면장원용구씨부인영산장씨시혜비( 前面長元容九氏夫人永山張氏施惠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정축(丁丑)년이다.

비석의 상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인 1937년의 정축년(丁丑年)으로 추정된다.


면장을 지낸 원용구의 처인 영산장씨는 동네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곡식등을 나누어 줌으로서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었고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을 갖도록 은혜를 베풀었다. 사람들로 부터 많은 칭송을 듣기도 하였다.



대성리(大城里)는 청산현 북면 대사전리(大寺田里)에 속해 있던 마을이며, 후에 마을이름을 대성리(大城里)라 고쳐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이나 1891년 기록에는 다 같이 청산현 북면 대사전리라 하여 91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옥천군에 소속시켰으며 청산현 북면 중 장연동리(長連洞里)를 청서면에 편입시키고 그 외의 마을은 청산면에 소속케 한 뒤 대사전리를 대성리라 고쳐 불렀다. 대성리라 한 것은 대사전리의 대(大)자와 성티(성촌리)의 성(城)자를 한자씩 빼내어 대성리라 하였다.


대사전리는 “한절밭”의 옛말을 한자로 쓰면서 “한”은 대(大)자로 절(마을입구에 있었던 절-기와파편 발견)은 사(寺)자로 밭은 전(田)으로 써서 대사전이라 하였으나 원 옛말의 뜻으로는 “한”은 크다는 말이며 “절“은 길다라는 말이며 ”밭“은 전이므로 ”크고 긴 밭“이란 뜻이다. 이곳 지형으로 보아 보청천가의 크고 사래가 긴 지대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큰절밭마을>큰절밭말>큰절밭>한절밭>한질밭)
성티(城峙)라 함은 “잿마”의 옛말을 한자로 쓴 것으로 추측된다.


대성리의 자연마을은 한절밭, 잿마, 월남(月南, 월내미) 등이 있으며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세거지로 한호팔경(閑湖八景)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1969년 3월 1일 개설하여 1995년 3월 1일 폐교된 대월초등학교 자리가 남아있으며 월남소류지와 1967년에는 축조된 대성소류지가 있다.







시혜비옆으로는 원주원씨세거비와 그 유래비가 같이 서있다.철제울타리를 두르고 잔디밭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