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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면 가곡리 열효문(陽山面 柯谷里 烈孝門) 본문
영동군 향토유적 제 40 호 이 정문은 인천이씨 원동(源東)의 처인 선산 임씨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씨는 부원군 임백령의 후손으로 임선원의 딸이며 인천이씨 원동의 아내이다.
천성이 정숙하여 남편의 병환에 허벅지 살을 베어 먹임으로써 두 차례나 병을 고쳤다.
조정에서는 고종 29년(1892) 정렬(貞烈)로 정문을 명하였다. 효열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 기와집이다.
그 후 1972년에 보수하였으나 퇴락하여 근간에 새로 보수하였다.
열녀학생이원동처유인선산임씨지려(烈女學生李源東妻孺人善山林氏之閭)라고 각자 되여 있으며 상지29년(고종29년.1892년)에 정려되었다.
구레장씨는 19세기 말엽의 인물로서 장성효의 딸이며 인천이씨 이상구의 아내로서 장필무의 후손이며 판관 이시신의 10세 손부이다.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출가 한후에도 시어머니를 모시는데 정성을 다하여 고종때에 정려되었다.
양산면 호탄리 도로변에 정려문이 있었는데 현재는 이 곳으로 옳겨 합설하였다.
정려문에는 효부학생이상구처유인구례장씨지려(孝婦學生李相矩妻孺人求禮張氏之閭)라고 적혀있다.
양산면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금강 수계인 호탄천이 천태산에서 발원하여 면의 중앙을 흐르다 면의 남부를 동서로 가르며 흐르는 금강 본류에 유입된다. 천태산 · 마니산 · 노고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 곡지에 위치한다. 관내에 천태산 영국사와 양산 8경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면 중앙으로 68번과 501번 지방도가 경유하고 있으나 외부와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현재 가곡리 · 원당리 · 호탄리 · 누교리 · 봉곡리 · 죽산리 · 송호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가곡리이다.
지명은 고려 시대까지 존속했던 양산현(陽山縣)의 명칭에서 유래한 면 지명이다. 『삼국사기지리지』(상주)에 "영동군은 영현(領縣)이 둘이다. 양산현은 본시 조비천현(助比川縣)인데 경덕왕이 (양산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지리지』(경상도 상주목 경산부 양산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옥천)에도 유사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를 통 해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산'이란 지명이 생성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면은 조선 시대 양내면 지역으로 당시 군의 경계가 영동현의 남부로 길게 뻗어 있던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의 형태였다.
조선 시대 양내면은 『여지도서』에 누교리(樓橋里) · 호탄리(虎灘里) · 현리(縣里) · 원당리(元堂里)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각 동리의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여지도서』에 기록된 '현리(縣里)'와 '양산', 그리고 『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 표기된 '양산'과 '양산시(陽山市)'라는 지명을 통해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고 있던 과거 양산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와 『동여도』에 양내면이 표기자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다.
구한말의 양내면은 16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1906년(광무 10)에는 현재의 학산면과 용화면 일대와 함께 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신구대조』에는 양내면을 포함하여 양남일소면의 모리 일부와 남이면의 중심동을 통합하여 과거 양산현의 이름을 취해 양산면이라 명명하고 9개 리로 새롭게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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