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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면 중전리 신익전묘지(仰城面 中田里 申翊全墓地) 본문
신익전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만(汝萬), 호는 동강(東江).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이고 어머니는 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의 딸 전의이씨이다.1605년(선조 38) 태어난 신익전(申翊全)은 1628년(인조 6) 종묘제례에서 예악을 연주하는 재랑(齋郎)으로 천거되고, 이후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자호란으로 형 신익성, 최명길 등과 같이 소현세자를 따라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심양에서 돌아와서는 의정부사인, 홍문관부응교, 사간원사간, 광주목사를 지냈다.
그 후 1639년 서장관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효종 때 호조참판, 예조참판, 병조참판, 한성부우윤, 한성부좌윤을 거쳐 승정원도승지를 역임했다. 신익정은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한때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으나, 충신(忠信)을 신조로 삼아 큰 위난을 당하지 않고 1660년(현종 1) 5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신익전은 김상헌(金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일찍이 학문이 높은 것으로 이름이 났다. 특히 『주역(周易)』에 밝았으며 문장과 서예에도 능했다.
동지춘추관사로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저서로는 『밀양집』과 『동강유집(東江遺集)』 19권 3책이 있다. 다음은 신익전의 시 한 수이다.
새재는 굽이굽이 고갯길이요/ 용추는 깊고 깊은 연못이라네 /구름은 산허리를 두르고/ 아침 해 산머리에 빛나네/ 어여쁜 새는 나무에서 울고/ 미끈한 물고기 연못에서 뛰네/ 저들이야 모두 제 뜻대로 살건만/ 나는야 갈길 멀어 석양 길로 접어든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중전리 중방에 있으며 묘 앞에 박세채(朴世采)가 비문을 지은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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