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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오봉. 본문

푸른바다의 창가에서/photo 에세이

소녀와 오봉.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4. 12. 14:13


점심시간이 좋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바빴다.

주인집 아들 점심상을 오봉에 차려

학교로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머리에 오봉을 이고 학교가는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소리를 듣지 않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잔소리도

주인아저씨의 징그러운 손길도,


내가 학교로 오봉에 그 시절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소고기 장조림이며 고등어 토막등의 반찬을 담아 학교로 가면

주인집 아들은 선생님과 같이 그 오봉에 밥상을 비웠다.

나는 그들이 밥을 다 먹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 따스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까무룩 졸기도 했다.


저 어린것을 하면서...

엄마는 나를 보내며 우셨다.

집보다야 낮겠지 하며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하늘을 보셨다.

먹어주고 재워주고 나중에 시집까지 보내준다고 했다.

국민학교를 문턱을 다 넘지도 못하고 나는 백여리 떨어진 남의집 애보기로 가야했다.

말이 애보기지 집안에 청소며 빨래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참 서럽게도 살았다.

주인집 아주머니 시내 나가시고 안계신날에는 주인집 안방에 불려가

주인아저씨 몸을 주물러 주어야 했다.

그럴때 마다  "이쁘구나," 하며 주인집 아저씨는 내 엉덩이를 주물렀고

그럴때마다 이리저리 피하는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말 안들으면 내쫒는다고 엄포를 주었다.

엄마가 있는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가난함이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열심을 내도 항상 배고팠던 그 집이 싫었다.

주인아저씨의 싫은손길도

힘들고 배고픔보다는 나았다.


'뭘 하다 이리 늦게와"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소리를 들어도

주인집 아들과 선생님이 먹다 남긴 그 밥과 반찬을 먹을수 있어서 나는 참 좋았다.

그들이 먹다 남긴 밥과 반찬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지바른 산소가에서 남은 밥과 반찬을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걸 잊을수 있었다.



[오봉(御盆)  -쟁반의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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