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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면 조촌리 태교사(遠南面 助村里 泰喬祠) 본문
조촌리에서 원남저수지 둘레길을 끼고 돌다보면 저수지를 가르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태교사는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길을 접어들면 만날수 있다.
태교사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어 그나마 관리가 되고 있는 상태이다.
전체적으로 홍살문과 사당의 단청과 칠을 새로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태교사는 1744년 주응동이 주희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건립한 사당을 말한다.
태교사의 설립자인 주응동(朱應東)의 본관은 신안(新安)이고 자는 광여(光汝)이다. 음성 출신으로, 주희(朱憙)[1130~1200]의 2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태교사는 1744년(영조 20)에 주응동이 조선 초기의 문신 김여지(金汝知)[1370~1425]가 명에서 가져온 주희의 영정을 경기도 안성에 사는 김용으로부터 기증받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인 문곡영당(文谷影堂)이 그 시초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1893년 재건되었는데, 이때 사당의 명칭을 태교사로 고쳐 불렀다. 1905년과 1940년에 건물을 중수한 데 이어 1963년에는 계단을 설치하고 정문을 중수하였다.
태교사(泰喬祠)는 유교문화와 관련한 전통 목조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전면에 재실이 있고, 그 뒤에 담장을 두고 솟을삼문 형태의 삼문이 있으며, 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있다. 전체적으로 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전당후묘 형식의 건물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전체 면적은 33㎡이다. 정면 3칸 기둥 사이의 간격은 2.14m로 등분하였으며, 측면의 툇간 1칸은 1.2m로 좁게 하였다. 나머지 1칸은 2.46m로 분할하였다. 구조를 보면 높이 70㎝의 자연석 기단 위에 팔각형의 주춧돌이 놓였으며, 그 위에 둥근기둥과 사각기둥을 혼용하여 세웠다.
기둥 상부의 공포는 무출목(無出目) 1익공 형식이며, 외부로 돌출된 부재는 쇠서가 퇴량 끝부분에서 직각으로 꺾였다. 창방(昌枋)으로 결구된 기둥 사이에는 소로가 4구씩 배치되어 주심도리와 장설(長舌)을 받쳤다. 가구(架構)는 퇴주와 평주 사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워 툇보와 대들보를 결구하는 형식으로, 대들보 윗부분에 동자기둥을 세워 보를 받쳤다. 보의 윗부분에 높이 57㎝의 사다리꼴 모양의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와 옥개의 무게를 지지하도록 하였다. 사당의 양쪽에는 은행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벌목하고 없다. 안에 주자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태교사는 1987년 3월 31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올렸으나
근래에는 주희의 생일인 음력 9월 15일에만 향사를 올린다.
강당은 기단으로 높게 축조된 둘째 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 양쪽 2칸은 온돌방을 두고, 중앙 2칸은 대청을 두었다. 창호는 정면의 중앙 2칸에 4분합 띠살문을, 양쪽 칸의 윗부분에 쌍여닫이 띠살창을 달았다. 정면 4칸 기둥 사이의 간격은 2.43m로 등분하였고, 측면은 불규칙하게 나누었다.
주간격(柱間隔)은 정면 4칸을 모두 2.43m로 등간(等間)을 이루며 구획하고, 측면은 1.2m와 2.43m로 불규칙하게 분할하고 있다. 구조는 높이 1.36m의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가로 21㎝, 세로 21㎝의 기둥을 세우고 있다. 기둥 상부의 공포는 창방과 기둥머리가 없이 간단한 부재를 건물 내외부로 돌출시켜 대들보의 무게를 받쳤다.
가구(架構)는 전·후·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결구하는 형식으로, 대들보 윗부분에 높이 24㎝의 동자기둥을 세워 보를 받쳤고, 그 위에 높이 54㎝의 사다리꼴 모양의 대공을 세워 종도리와 옥개의 무게를 받치는 등 일반 민가 주택에서 널리 쓰이는 민도리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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