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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대강면 사인암 낭원군각자(大崗面 舍人岩 朗原君刻字) 본문
대강면 사인암리 사인암 절벽에 해서체로 크게 새겨져있다. 가로 60㎝, 세로 140㎝로 사인암의 맞은편 도로에서도 잘 보이는데 숙종 19년(1693) 겨울에 낭원군이 사인암을 다녀간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낭원군 이간(李侃)은 왕족으로 선조의 12자인 인흥군 영(仁興君瑛)의 아들이며 효종의 당숙이다.
자는 화숙(和淑), 호는 최락당(最樂堂)이다. 형인 낭선군(朗善君)과 함께 서예와 시가에 능하였다.
암각내용 : 朗原君重遊癸酉冬
낭원군 이간(李侃)은 1640년인 인조 18년에 태어났다. 위에서 밝힌대로 이름은 이간(李侃)이며 호는 최락당(最樂堂)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는 왕실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선조(宣祖)의 13번째 손자인 인흥군(仁興君)의 아들이며 효종(孝宗)의 당숙이며 도정(都正)을 거쳐 낭원군(朗原君)에 봉해졌다. 여기서 군(君)은 고려(高麗) 그리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종실(宗室) 외척(外戚) 공신(功臣)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달은 언제 나며 술은 뉘 삼긴고
유령이 없은 후에 태백이도 간 데 없다
아마도 물을 데 없으니 홀로 취코 놀리라
이도 성은이요 저도 성은이라
모이신 공자님네 아는가 모르는가
진실로 이 뜻을 알아서 동락태평하오리라
달은 언제 생기며 술은 누가 만들었는가. 술 잘 먹기로 유명한 유령과 이태백도 다 옛날 사람이라 물을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라도 취하겠다는 것이다. 유령은 패국 사람으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그가 방안에서 옷을 벗고 있으면서 친구가 와도 일어나지 않아 친구가 나무라면 ‘나는 천지를 막(幕)과 자리로 삼고 집을 옷으로 삼는데, 너는 왜 남의 옷 속에 들어와 시비를 거는거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백은 달과 그림자와 자기 이렇게 셋이 술판을 벌였던 시인이다. 동정호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 물에 비친 달을 잡기 위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남긴 술의 대명사 이백이다. 위 첫 수는 ‘왜 술 먹고 취하는가?’라고 묻고 둘째 수가 ‘성은이라 태평성대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 대답하고 있다.
이도 저도 다 성은이라 모이신 공자님네는 아는가 모르는가. 임금이 자신과 공자들을 잘 돌보아주시니 이 태평세월을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귀족들을 공자님네라고 부르고 있어 종친의 잔치에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왕자나 종친들은 처신을 잘못하면 역적의 앞잡이로 몰려 누명을 쓰고 죽기 십상이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종친에게는 임금의 은혜와 충성을 공개적으로 언명해 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시조들을 남겼다.
이 외에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느낀 회포나 늙어가는 심정을 읊은 것, 심성수양을 권장하는 것 등의 시조들이 있다.
형 낭선군과 함께 전서·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법주사벽암대사비, 만덕산백련사비 등이 남아있다.
유령이 없은 후에 태백이도 간 데 없다
아마도 물을 데 없으니 홀로 취코 놀리라
이도 성은이요 저도 성은이라
모이신 공자님네 아는가 모르는가
진실로 이 뜻을 알아서 동락태평하오리라
달은 언제 생기며 술은 누가 만들었는가. 술 잘 먹기로 유명한 유령과 이태백도 다 옛날 사람이라 물을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라도 취하겠다는 것이다. 유령은 패국 사람으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그가 방안에서 옷을 벗고 있으면서 친구가 와도 일어나지 않아 친구가 나무라면 ‘나는 천지를 막(幕)과 자리로 삼고 집을 옷으로 삼는데, 너는 왜 남의 옷 속에 들어와 시비를 거는거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백은 달과 그림자와 자기 이렇게 셋이 술판을 벌였던 시인이다. 동정호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 물에 비친 달을 잡기 위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남긴 술의 대명사 이백이다. 위 첫 수는 ‘왜 술 먹고 취하는가?’라고 묻고 둘째 수가 ‘성은이라 태평성대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 대답하고 있다.
이도 저도 다 성은이라 모이신 공자님네는 아는가 모르는가. 임금이 자신과 공자들을 잘 돌보아주시니 이 태평세월을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귀족들을 공자님네라고 부르고 있어 종친의 잔치에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왕자나 종친들은 처신을 잘못하면 역적의 앞잡이로 몰려 누명을 쓰고 죽기 십상이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종친에게는 임금의 은혜와 충성을 공개적으로 언명해 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시조들을 남겼다.
이 외에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느낀 회포나 늙어가는 심정을 읊은 것, 심성수양을 권장하는 것 등의 시조들이 있다.
형 낭선군과 함께 전서·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법주사벽암대사비, 만덕산백련사비 등이 남아있다.
단양팔경의 하나인 사인암 절벽에 새겨진 암각자가 있다. 1693년(숙종 19) 낭원군에 봉해진 이간이 사인암을 다녀간 기념으로 새겼다. 해서로 ‘낭원군중유계유동(朗原君重遊癸酉冬;낭원군이 계유년 겨울에 다시 유람하다)’라고 새겨져 있다.[출처 금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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