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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오궁리 평산신씨공덕비(甘谷面 梧弓里 平山申氏功德碑) 본문
감곡면 오궁리 백련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공덕비입니다.
오궁리는 대대로 평산신씨가 대성인 마을입니다.백련공원과 잇대어 신후재의 영정이 있는 규정영당과 신후재가 수학하였던 백련서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사적비등을 세우는 등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공덕비는 공원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련공원도 관리가 많이 필요합니다. 사적비의 보호석재울타리의 파손과 나무의자등이 모두 앉을수 없게 파손되어 있습니다.
2015년에 건립된 공덕비입니다.
황해도 평산(平山, 평주의 다른 이름)에 본관을 두며,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이다.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혹은 강원도 춘천)출생으로, 본래 궁예(弓裔)의 막료였는데 배현경(裵玄景)·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 등의 장군과 함께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927년(태조 10) 공산(公山)싸움에서 태조의 위급을 구출하고 대신 전사하였다. 《삼국사기》에는 태조가 이들 네 공신에게 각각 사성(賜姓)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평산신씨의 세계는 시조의 14대손에서 25파로 갈리는데, 그 중 사간공파(思簡公派:浩)·문희공파(文僖公派:槩)·제정공파(齊靖公派:孝昌)·정언공파(正言公派:曉)·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夏)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조선에 상신 8명, 대제학 2명, 판서 20여 명과 많은 무장을 배출하였는데, 대부분 문희공파·정언공파·사간공파에서 나왔으며, 특히 문희공파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입(砬)을 중심으로 하는 무신집안이고, 정언공파는 영의정 흠(欽)을 중심으로 하는 문신집안이다.
주요 인물을 파벌로 살펴보면, 문희공파에서는 신개(申槩)가 세종 때 예문관대제학·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에 올랐으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그의 중손 신상(申鏛)은 중종 때 호당(湖堂)을 거쳐 이조·예조 판서를 지냈다. 신상의 손자 신잡(申磼)은 공신으로 평천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아우가 바로 임진왜란 때의 명장 신입이다. 신입의 아들 신경진(申景禛)·신경유(申景裕)·신경인(申景禋) 3형제는 모두 무과 출신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특히 신경진은 병자호란 때의 명장으로서 조선에서 무과 출신으로 영의정까지 오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문희공파에서만 장신(將臣)이 10여 명이 나왔으며, 신입의 현손으로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신완(申琓)은 장희빈(張禧嬪) 처벌 때 서인(西人)의 소론(少論)에 속하여 온건론을 주장하였다. 또 여류문인이며 서화가이고,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신사임당(申師任堂), 조선 후기 서화가인 신위(申緯)·신명연(申命衍) 부자가 있다. 특히 신위는 한시(漢詩)의 대가이며 대사간·도승지를 지냈다.
정언공파에서는 신흠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인조 때 대제학·영의정을 지냈는데,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으로 꼽힌다. 그의 아우 신감(申鑑)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왕조실록 복간에 공이 컸고, 아들 신익성(申翊聖)은 인조 때 병자척화 5신(丙子斥和五臣)의 한 사람으로 청(淸)나라에 잡혀갔으며, 그의 아우 신익전(申翊全)과 함께 문한(文翰)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밖에 숙종 때 명인 신정(申晸),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내고 봉조하(奉朝賀)가 된 신응조(申應朝), 그리고 판서를 지낸 신응현(申應顯)이 있다.
사간공파에서는 세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사간공 신호(申浩)의 6대손 신점(申點)·신암(申黯) 형제가 있는데, 신점은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 구원병을 끌어들이는 데 공이 커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책록되었고 예조·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직손(直孫) 신율(申慄)이 대북파(大北派)에 가담, 소북파(小北派)를 숙청하는 옥사에 관여하여 인조반정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신암의 후대에서는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아들 신민일(申敏一)은 대사성, 현손 신사철(申思喆)은 중추부영사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신만(申晩)·신회(申晦) 형제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이 밖에도 숙종 때 공조판서·참찬을 지낸 신임(申銋), 이조참의 신심(申鐔), 현종 때 대제학·이조판서 신재식(申在植), 형조판서 신사운(申思運), 예조판서 신석우(申錫愚)·신석희(申錫禧) 등이 있다.
신점의 조카 신충일(申忠一)은 선조 때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라는 지도 부기(附記)를 작성했는데, 한·만(韓滿)관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근세인물로는 고종 때 참정대신(參政大臣)을 지낸 신기선(申箕善), 고종 때 판소리 여섯마당을 체계화한 신재효(申在孝), 항일 의병장 신돌석,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申翼熙) 등이 있다.
평산신씨의 주류는 대체로 서인·소론(일부 노론·북인)으로서 서인이 주동한 인조반정을 고비로 조선 후기에 세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평산신씨 [平山申氏]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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