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단성면 하방리 적성산성(丹城面 下彷里 赤城山城)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단성면 하방리 적성산성(丹城面 下彷里 赤城山城)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1. 2. 21:46



적성산성은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900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 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적성산성내에 있는 신라적성비]



적성이 있는 성재산은 신라땅이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쪽에서 오자면 죽령을 넘어 남한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동쪽과 서쪽은 각각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죽령천과 단양천으로 감싸여 방어에 유리하며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요충지이다. 뿐더러 남한강 줄기를 따라 상류와 하류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남쪽으로 죽령을 넘는 육로 등 중요한 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간다. 따라서 적성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의 기와나 토기조각이 많이 발견되며 일부에서는 고려시대의 토기와 청자조각도 발견되었다. 이로써 이 산성이 삼국시대에 쌓아져서 격렬한 각축장이 되었고 대략 고려 말까지 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적성산성은 사적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