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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량동 서기사창건공덕비(栗陽洞 瑞氣寺創建功德碑) 본문
서기사는 현재 한국불교태고종충북교구 말사이나 신라말부터 있었던 비구니 수행처이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9년 중창주 손순덕보살이 재건하였으며 1970년 12월 보현비구니가 서운암이라 하였다.
그 후 조선말기에 발행되었던 낭성지에 절 이름이 서기사로 기록되어있음을 근거로하여 1990년 5월 10일에 서운암에서 서기사로 개명하였다.
또한 서기사에 모시고 있는 약사여래좌상은 1978년도 발견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7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서기사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서운사 자리에 있었던 사찰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뒤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청주목지도」와 전라남도 구례군의 운조루에 소장된 『여지도(輿地圖)』의 「서원지도(西原地圖)」에 서기암(瑞氣菴)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곳 절터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역 내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법당 뒤에 봉안된 석조약사여래좌상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서기암(瑞氣菴)에 대한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폐사 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서기암(瑞氣菴)이라는 이름으로 불사(佛事)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 다시 절 이름을 지금의 서기사(瑞氣寺)로 변경하였다.
서기암(瑞氣菴)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1940년에 서운사(瑞雲寺)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중건한 사찰이 들어서 있다. 근래에 지어진 약사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으며 마당에는 역시 근래에 조성한 불상과 5층석탑이 있다. 법당 뒤에는 이곳 절터에 전해지고 있던 고려시대 작품인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석조광배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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