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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엄동부락 효자이명기표창문(周德邑 奄洞部落 孝子李命基表彰文)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엄동부락 효자이명기표창문(周德邑 奄洞部落 孝子李命基表彰文)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9. 2. 17:51




서기 단기4292년(서기1959년)음력10월5일  이명기의 부친에 대한 효와 이명기씨의 생질부인 부인원씨에 대한 동네주민들이 만들어준 표창문이다.

동리의 화합과 효를 향한 마을주민들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 마을주민들에 의한 표창문이 남아있는 좋은 자료이다.

중원군 주덕면 엄동부락(中原郡 周德面 奄洞部落)이라 하여 당시 충주시와 합쳐지지 않아 당시의 명칭인 중원군이라는 명칭이 새롭다


엄동부락민들의 이름으로 준 효자 이명기씨의 표창문


우씨(右氏)는 자기(自己)의 부친(父親)께서 중풍증(重風症)으로 십유여년(十有餘年)을 와석불기(臥席不起)하시와 심고 (沈痼) 중(中)에 봉양지규(奉養之規)와 시탕지절(侍湯之節)의 근근불태(勤勤不怠)하엿쓸뿐 부친봉양(父親奉養)키 위(爲)하야 하절(夏節)이면 구육(狗肉)을 건포(乾脯)하야두고 봉양(奉養)하며 동절(冬節)이면 계저육(鷄猪肉)은 풍질(風疾)의 해(害)된다해셔 필(必)히 황육(黃肉)으로 봉공(奉拱)하며 기(其)의 부친(父親)을 봉양(奉養)키 위(爲)하야 전여답간사오두락(田與畓間四五斗落)을 기(其)의 생질(甥侄)을 무도공제(無賭控除)하엿스며 병부(病父)께서 수풍(漱풍)을 요청(要請)하실 시(時)에는 부친(父親)을 업고 동내(洞內)로 일주회(一周回)을 하며 또난 부친(父親)께서 기세(棄世)하신 즉시(卽時)로 부친(父親)을 봉양(奉養)하엿따난 공뢰(功賴)로 그의 생질부(甥侄婦)에게 의롱일태(衣籠一台)을 선사(善賜)하엿스며 생가(生家)의 후(后)을 계속(繼續)하기 위(爲)하야 일본(日本)의 재(在)한 사촌(四寸)을 초래(招來)하야 성혼(成婚)을 시키며 물질적(物質的)으로 보조(補助)하야 한 세대(世帶)을 설립(設立)하엿스매 이거션 모도가 효심(孝心)으로부터 나온거시입니다. 여사(如斯)한 선행(善行)은 금세(今世)에 한 모범(模範)이 될만하기로 본부락일동(本部落一同)으로부터 미적(美績)을 표창(表彰)하난 바입니다. 檀紀四二九二年 陰十月 五日 奄洞部落一同



이동연의 부인 원씨에게 마을주민이름으로 준 감사장



우부인(右夫人)은 이동연군(李東然君)에 부인(夫人)이며 이명기씨(李命基氏)의 생질부(甥侄婦)인데 기(其)에 외조부(外祖父)게셔 중풍증(重風症)으로 십유여년(十有餘年)을 와석불기(臥席不起)하시와 심고중(沈痼中) 대소변(大小便)을 밧어내난 동시(同時)에 죠곰도 염추(厭醜)하난 태도(態度)가 읍스며 외조부(外祖父)게셔 항상(恒常)걱졍이 심(甚)하신데도 불구(不拘)하고 더욱히 화순(和順)한 태도(態度)로 충고(忠告)하며 봉양(奉養)하난 범백(凡百)과 시어(侍御)하난 범절(凡節)이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하며 일호(一毫)도 나태(懶怠)함이 읍스매 여사(如斯)한 선행(善行)은 우리 부락(部落)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드러내여 타인(他人)의 모범(模範)이 될만함으로 본부락일동(本部落一同)으로부터 감사(感謝)한 뜻을 늑기어 약간(畧干)의 물품(物品)으로 감사(感謝)함을 표(表)하는 바입니다. 檀紀四二九二年十月五日  奄洞部落一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