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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리 음성오층모전석탑(邑內里 陰城五層模塼石塔) 본문
음성향토박물관앞에 자리하고 있는 모전석탑입니다.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탑을 축조하는 데는 건탑(建塔)에 앞서 벽돌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진흙을 빚어 벽돌을 구워내는 일이 곧 석재를 다듬어 모전석(模塼石)을 생산하는 일로 바뀌어져, 이러한 연유에서 결국은 모전석탑을 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통일신라 또는 고려 전기의 모전석탑.
음성 오층모전석탑은 원래 읍성읍 읍내리 교동 음성향교 앞 도로 건너편에 있었던 폐사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에 수봉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그 후 1995년 현재의 위치인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향토자료전시관 서쪽 광장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단층 기단(單層基壇) 위에 오층의 탑신부(塔身部)가 있는 전탑 형태의 석탑으로, 현재 2층과 5층의 옥신석(屋身石)이 결실되었고,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결실되어 있다. 각 옥개석의 전각부(轉角部)에는 풍경(風磬)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중에 4층 옥개석에는 철편까지 남아 있다.
모전석탑이란 건조재료는 석재이지만 형태가 전조탑파(塼造塔婆, 줄여서 塼塔)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 탑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전탑을 축조하는 데는 건탑(建塔)에 앞서 벽돌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진흙을 빚어 벽돌을 구워내는 일이 곧 석재를 다듬어 모전석(模塼石)을 생산하는 일로 바뀌어져, 이러한 연유에서 결국은 모전석탑을 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전석탑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서 한국석탑의 하나의 이색적인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전탑의 축조는 많은 수고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석탑에 비하여 극히 적게 조성되었고 모전석탑 또한 많이 조성되지는 못하였지만,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전탑에 비해서 모전석탑이 많이 건립되었음을 현존하는 유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을 좋아하였고, 또한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모전석탑의 형식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돌을 벽돌모양으로 가공하여 축조한 형식이며, 둘째는 전형양식(典型樣式)의 석탑에서와 같이 석괴형(石塊形)의 탑신석과 옥개석을 쌓되, 탑신석에는 좌우의 우주(隅柱)를 생략하고 옥개석 낙수면에는 전탑에서와 같이 층단을 표시한 형식이다.
첫 번째 형식에 속하는 것으로는 봉감모전오층석탑(鳳甘模塼五層石塔, 국보 제187호)·군위남산동모전석탑(軍威南山洞模塼石塔)·제천장락리칠층모전석탑(堤川長樂里七層模塼石塔, 보물 제459호)·정암사수마노탑(淨巖寺水瑪瑙塔, 보물 제410호) 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형식에 속하는 것은 선산죽장동오층석탑(善山竹杖洞五層石塔, 국보 제130호)·선산낙산동삼층석탑(善山洛山洞三層石塔, 보물 제469호)·경주서악리삼층석탑(慶州西岳里三層石塔, 보물 제65호)·경주남산리삼층석탑(慶州南山里三層石塔, 보물 제124호)·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 보물 제327호)·월남사지모전석탑(月南寺址模塼石塔, 보물 제298호)·운주사지석탑(雲住寺址石塔) 등이 있다.
그런데 통일신라시대에는 두 번째 형식의 모전석탑이 첫 번째 형식의 모전석탑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건립되었고, 탑의 위치가 안동·의성·선산·경주 등 죽령(竹嶺)을 통한 불교문화 전파경로의 통로상에 분포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통일신라시대 모전석탑 중 가장 오래된 의성탑리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말 내지 8세기 초의 건립으로 추정되며, 선산의 죽장동오층석탑과 낙산동삼층석탑도 8세기경의 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성탑리오층석탑은 곳곳에 목조탑파의 양식이 표출되고 있는 점에서 귀중한 존재이다.
첫 번째 형식의 모전석탑이 분황사석탑과 같이 삼국시대에 이미 건립되었음에 대하여 두 번째 형식도 첫 번째 형식보다는 뒤지지만, 7세기 말부터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성탑리오층석탑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게 된다.
신라 하대에 이르면 경주 서악리와 남산리의 모전석탑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모전석탑은 7세기 전반에 건립된 경주분황사석탑에서 시작하여 이후 계보가 이어져 신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건립되었고, 그 여운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상당한 수의 모전석탑이 건립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와 다른 점은 첫 번째 형식의 모전석탑이 오히려 많이 건립되었다는 점이다.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경향과 같이 의성탑리오층석탑을 그대로 모방한 석탑이 의성군의 빙산사지오층석탑으로 나타났고, 경주의 서악리나 남산리모전석탑의 석괴형 기단과 같이 입방체 자연암석 위에 세우는 모전석탑이 가까운 거리의 경주시 천북면 오야리에 건립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모전석을 만들어 축조한 첫번째 형식의 모전석탑이 다수 건립되어 제천장락리칠층석탑, 정암사수마노탑 등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의 현이동오층모전석탑(縣二洞五層模塼石塔), 삼지동모전석탑(三池洞模塼石塔) 등과 같은 탑도 건조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모전석탑은 아직 발견 조사된 바 없으나 정암사수마노탑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여러 차례 해체 수리되었음을 사적기와 탑 안의 사리장엄구 및 탑지석(塔誌石)에 의하여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은 이러한 수리를 거친 뒤의 것으로서,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모전석탑의 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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