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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부사성안의선정비(廣寒樓 府使成安義善政碑) 본문

전국방방곡곡/남원(南原)

광한루 부사성안의선정비(廣寒樓 府使成安義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2. 12. 09:36

 

 

부사 '성안의(成安義)는 선조 40년, 1607년 남원부사로 부임 후 4년여 동안 베푼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성안의 부사의 송덕비는 이몽룡 실존설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라고 한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이도령으로 알려진 '성이성'이라는 이야기이다.


춘향전은 춘향과 성이성 등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고사나 설화가 가미되어 집필된 당대 소설이라고도 한다. 성이성의 생애는 춘향전의 과거 급제와 암행어사 등 그 생애가 똑같다.

성안의는 선조 24년, 1591년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다. 저서로 '부용당선생일고'가 있다.​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녕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곽재우 휘하에서 활약했다. 그뒤 예조좌랑을 거쳐 남원부사,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

1623년 인조반정 뒤 성균관사성으로 상의원·봉상시정을 지내고,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로 왕을 호종했다. 1624년 제주목사를 제수받고, 1628년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건강을 이유로 가지 않았다. 뒤에 이조판서·양관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창녕의 연암서원(燕巖書院)과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광한루에 모아놓은 공적비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건립하였다

부사성안의선정비(府使成安義善政碑)라고 써있으며 낮은 철재울타리를 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