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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면 국사리 의마총(玉山面 國仕里 義馬塚) 본문
옥산면 몽단이고개에 있는 의마총입니다.비석에는 매은당의마지총비(梅隱堂義馬之塚碑)라고 적혀있으며 한쪽에는 몽단이재와 의마총에 유래를 설명한 유래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매은당 박동명 장군은 선조 8년(1575)에 청주시 비하동 '주봉마을'에서 출생, 선조 32년(1599)에 무과에 급제하여 태안군수, 제주목사를 봉직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62세의 몸으로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진격해 올라갔다.왕을 안전하게 피신시킨 뒤 적과 맞서 싸우다 안타깝게도 적의 화살에 맞아 순국하였다. 부하들은 장군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고, 다만 애마가 물어뜯은 박 장군의 저고리만을 발견하게 된다.박동명의 휘하장수 김득성은 저고리를 말 안장에 올려놓고 도술로 화살을 허공에 저어 박 장군의 혼을 불렀다.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줄곧 따라오던 영혼이 '몽단이고개'에 이르러 응답이 끊어졌다. 이 무렵 큰 아들 홍원이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가 나타나 "내가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구천으로 올라갔으니 내 옷을 거두어 고개에 무덤을 쓰도록 하라."고 현몽하였다.아들이 잠에서 깨어 아버지가 순절한 것을 알고 '몽단이고개'에 이르니 김득성이 화살을 꽂아놓고 진혼제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애마는 아래 골짜기에 와서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7일간이나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슬피 울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곳을 '꿈에서 깨어났다' 하여 '몽단이(夢斷-)'로 '말발굽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접지골(接趾-)'이라 불렀다.박동명장군의 묘소는 의마총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면 만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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