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광면송평리김여성효자각(文光面松坪里金礪成孝子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문광면송평리김여성효자각(文光面松坪里金礪成孝子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11. 2. 10:52

 

 

김여성(金礪成) 1503(연산군 9)~1575(선조 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성청(聖淸), 호는 송암(松菴), 본관은 상산(商山)이다. 예조참판(禮曹參判) 지낸 김추(金樞)의 현손이며 승지(承旨)에 추증된 김승평(金昇平)의 아들이다. 중종반정에도 가담하여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녹선(錄選)되었고, 벼슬은 주부(主簿)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집안 사정이 가난하였으나 아우 김여신(金礪新)과 함께 수시로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때는 그 병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변의 맛을 보아 가며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묘막(墓幕)을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또한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3년을 더 시묘를 살았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모셨으며, 돌아간 뒤에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극진하였고 슬퍼하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1533년(중종 28)에 그의 아우 김여신(金礪新)과 함께 두 형제의 효행을 기리어 괴산읍 역말에 정려문이 세워졌고 이후 문광면 송평리로 옮겨졌다. 한편 그는 성리학에도 통달하여 이황·이이·조광조 등 여러 학자들과 편지로 시를 주고받았으며, 조광조가 사화로 죽자 만적시(輓吊詩)를 짓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괴산군지』 『괴산군삼강록』 『내고장전통가꾸기(괴산군)』


 

 

 

 

 

 

 

 

 

 

 

이 정려는 중종(中宗) 28년(1533) 효자 김려성(1513-1592)의 정려로 괴산 대덕촌(大德村)에 세웠던 것인데 1948년 상산김씨(商山金氏) 문중에서 지금의 자리인 문광면 송평리로 이건(移建)한 것이다.
김려성은 자는 성청(聖淸), 호는 송암(松菴), 본관은 상산(商山)이며, 증(贈) 승지(承旨) 김승평(金昇平)의 아들이다. 벼슬이 주부(主簿)에 이르고 중종조에 정국원종훈(靖國原從勳)에 책록되었다. 아우 여신(礪新)과 더불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중종 28년 아우와 함께 효로써 생정(生    )과 충현(忠賢)의 예에 의하여 상을 받았다. 모친의 3년 시묘를 마치자 부친상을 당하니 계속하여 6년을 시묘하였다.
효자각 안에는
 “孝子 通訓大夫行軍資監主簿靖國原從勳商山金礪成之閭”
라 쓴 편액과 후손 귀영(貴榮)이 쓴 ‘송암김선생행장(松菴金先生行狀)’이 판각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보호철책을 둘렀다.

송평리마을 진입로에 위치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