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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사담리보광사(沙梨面沙潭里普光寺)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사담리보광사(沙梨面沙潭里普光寺)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11. 1. 21:14

 

 

 삼성각 본존불

 

 

 

 

 

 

 

 

 

 

 

 

 

 

 

 

보광사는 고려 28대 충혜왕(忠惠王) 1년에 창건되고 조선 헌종(憲宗)때 폐사된 옛 봉학사(鳳鶴寺)터의 아래쪽에 건립한 사찰이다.
1967년 사찰 위쪽에 있는 봉학사지를 답사한 기록에 의하면 봉학사지 5층석탑 2층 옥개석 사리공(舍利孔)에서 조선 세조(世祖)때 탑을 보수한 기록문이 나왔다고 하며, 폐사지에서 수습한 암막새에 음각된 당초문이 고려중기 이후로 보여지는 것으로 밝혀져 봉학사의 창건과 중수 연대를 가늠하게 하고 있다.
한편 『忠淸北道誌』에 의하면 1925년 폐사지에 권봉주(權鳳柱)스님이 초막을 세우고, 김봉삼(金奉三)스님이 1936년부터 폐사지에 있던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普光寺) 대웅전(大雄殿)에 봉안하여 주존불(主尊佛)로 모셨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 보광사가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보광사에는 봉학사 폐사지에 있는 5층석탑과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 등의 문화재가 있다

 

 

보광사는 보광산에 자리한 사찰이다. 대웅전 처마 끝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낮은 산들이 손에 잡힐 듯 친근해 보이고 마음까지도 시원해진다. 대웅전 오른쪽 바위 밑에선 석간수가 샘솟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넘쳐 나는 샘물이 맛 또한 그만이다. 보광사는 없어진 봉학사의 후신으로 그 명성을 간직해 오고 있으며, 봉학사지 석조여래상을 대웅전에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이 부처님에 대해 전해져오는 전설은 100년의 세월을 건너뛰며 이어져 있어 신비가 더 하다.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가 죽어 명당을 구하다 마침 봉학사터가 금계포란형의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폐하고 묘를 썼다. 이때 이 부처님은 목이 부러지는 운명에 처해 지금의 보광산 언덕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하루는 김소의 자손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서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자손은 귀가 솔깃해서 스님의 말을 따랐으나 오래지 않아 집안에 화가 겹쳐 망하고 말았다. 물을 막음으로 해서 금계가 품고 있던 알이 다 썩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100년 후 보광산 아래 마을에 사는 손씨는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나는 100년동안이나 묻혀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보광산에 올라가 언덕을 파면 돌부처가 나올 것이니 잘 봉안하라. 는 꿈이었다. 그래서 손씨는 십여 명의 동료를 모아서 언덕을 파고 이 부처님을 모셔다 지금의 보광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명당이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지은 인연에 따라 복이 되는 곳을 이르는 것이다. 불가에 복전(福田)이란 말이 있다. 복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명당이나 복전이나 그 자체가 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복은 명당을 운위하는 사람, 복전을 일구는 사람, 그 사람이 짓는 수많은 행실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명당도 복전도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