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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중삼리 장사랑사당(賢都面 中三里 將仕郞祠堂)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현도면 중삼리 장사랑사당(賢都面 中三里 將仕郞祠堂)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2. 15. 06:25

 

현도면 중삼리에 위치하고 있는 보성오문의 장사랑사당(將仕郞祠堂)입니다. 장사랑사당에는 보성오씨 상익(尙益), 진기,진강 등 19위를 모신 제각으로 음력 10월 9일에 시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오상익의 장남 진기는 자는 백유로 78세에 죽었으며 묘는 죽암리 횡천에 있다. 아들 제빙은 자는 예중이고 부친 묘아래에 묻혔다. 명기는 자는 여갑이고 61세에 졸하였다. 장사랑사당은 1995년 을해년에 건립하였습니다.

 

 

 

 

장사랑공 상익의 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옛 문의 서쪽 삽십리 남짓한데에 기산(삼상)이 있고 동쪽에 매남이 있으니 오씨의 세장지요 산천정기를 배태하고 중간으로 몸을 날려 국을 만들고 갑각을 낀 듯 응결된 곳이 장사랑 부군의 묘소이니 의인 성주현씨와 합장이다. 묘도에 수비를 궐하고 있는 주손 동균과 구대손 광수가 저대로 더욱 오래되고 더욱 닳아 없어지게 되면 증거 할수 없게됨을 근심하여 곧 입석을 계획하고 나를 찾아와 비문을 청한다. 나는 그를 맡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누차 사양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여 이내 그 장을 살피고 서술하는 바 공의 휘는 상익이요 자는 이찬이니 보성에 계출한 윗대에 휘 현필은 고려때의 훈공이 있어 보성부원군으로 봉해졌고 이조에 들어와 숙동 진의부위가 있으니 문의에 전거한것은 공으로 부터 시작이다. 육대를 지나서 정립은 통정대부요 일찌기 송규암과 정북창의 현덕을 사용하여 노봉서원을 창건하고 조두의 예를 받드니 지위 높은 사람들과 학자들의 풍향이 정도를 좇아 공은 효제의 가문에서 성장하고 시례의 가정에 물들어 식견이 뛰어나고 지조가 어질고  확고 하였으며 원이 밟고 있는 집과 땅은 그 본거를 잃치않았다. 공은 천성적으로 과거보는 일이나 권세나 명리따위를 좋아하지 않았고 대인접물은 한결같이 너그럽고 온화함을 마음에 두었고 일을 처리함에는 공명정대함이 일상생활에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그 덕행에 감복하니 커다란 그의 야망을 미루어 알만하였다. 혼연한 화기가 얼굴에 감도는 것을 군자의 단아한 형상인데 공은 이미 활짝열ㄹ려 크기 때문인가 군자의 지조를 든든하게 지키며 꺽이지 않았고 공은 문장이 뛰어나므로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주의 지위에서 세상에 때묻고 더러운것을 자우처럼 씻어주었다. 공은 85세의 수를 누리고 2남3녀가 있으니 아들은 진기 진강이요 정지원 조회 유위는 사위다. 재빙 재완은 장방출이요 재우 재항은 차방출이다.내외 손자와 종손들은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공의 저작이 흡족할 만큼 풍부하고 빛났으나 백년세월에 멸실되고 거의 다 산실되었으니 아깝도다. 삼가 아직껏 남아있는 한두가지와 조령을 골라 찬하여 주노니 훗날 내독자는 한점의 산적으로 솥안에 들어있는 전체의 맛을 족히 아는것 처럼 묘도의 비문에 이르러도 다른 닐 도리에 군자의 말을 채택하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하노라.단기4299년 병오2월 1일 세움.방예 희국 찬 11대손 동균 서. 

 

 

장사랑사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장사랑사당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풍경입니다. 여러 곳에 중소기업 형태의 공장이 있으며 점차 농촌의 모습은 쇠락되어 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