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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관찰사신억영세불망비(公山城 觀察使申檍永世不妄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공주(公州)

공산성 관찰사신억영세불망비(公山城 觀察使申檍永世不妄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8. 20. 06:47

 

공산성 선정비군내에 자리하고 있는 평산인 관찰사 신 억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신공억영세불망비(觀察使申公永世不妄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신 억은 평산인으로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춘(景春)이다. 1864년(고종 1) 좌의정 이유원(李裕元)이 조대비(趙大妃)에게, 치적이 뛰어나 수령직을 맡을 만한 인재 3인을 추천할 때 전 문천군수 신억도 함께 추천되었다.

곧 공충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고, 부패한 향리의 숙정과 철저한 재결(災結) 조사를 통하여 선정을 하였다. 그 해 교리 강장환(姜長煥)이 영동군수의 부정을 무고한 사건이 일어나 강장환은 유배되었으나, 신억은 외신(外臣)으로서 내신(內臣)의 처벌을 논하였다고 하여 견책당하였다. 뛰어난 치적으로 좌의정 김병학(金炳學)에 의하여 임기 이후에도 연임하였다.

그 뒤 또 관아의 재정을 비축하고 군기를 보수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1866년 체임시 남연군(南延君) 묘의 제사를 주관하고 제문을 찬진(撰進)하라는 왕명을 받았다. 1873년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억 [申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승정원일기 2680책 (탈초본 127책) 고종 1년 8월 23일 을묘[신묘] 11/29 기사 1864년  同治(淸/穆宗) 3년

○ 吏曹口傳政事, 公忠監司單申檍除授事, 承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