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직동 창룡사(直洞 蒼龍寺)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직동 창룡사(直洞 蒼龍寺)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9. 10. 15:43

 

충주시민들에게는 창룡사라는 이름보다는 남산절이라고 더 불리우는 사찰입니다. 범바위로 불리던 호암동에서 고든골(직동)로 들어서면 만날수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숨쉬는 곳입니다. 남산절 올라가는 계곡에 가재가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위를 뒤집기만 해도 나오는 가재잡는 재미에 많이도 찾은 곳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법주사의 말사.  남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靑石塔) 등의 유물로 보아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절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작성된 「중수기」에 의하면 고려 후기에는 나옹화상이, 조선 선조 때에는 서산대사가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70년(고종 7)에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창룡사 법당을 헐어 수비청(守備廳)을 지음으로써 옛 자취가 사라졌다. 그런데 현재의 충주 관아 건물인 청녕헌(淸寧軒)과 충주 제금당(製錦堂)에 입혀진 기와가 창룡사에서 사용되었음은 1984년 관아 건물을 중수할 때의 명문(名文) 기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 보아 1652년(효종 3)에 창룡사의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조선 중기까지 크게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04년 신도 박(朴)씨가 법당을 신축하였으며, 1913년 후불탱화를 봉안하였고, 불상을 개금하였다. 1929년에는 주지 김추월(金秋月)이 수비청을 뜯어 지현동에 대원사(大圓寺)를 지었다. 1951년 주지 동인(東寅)이 중건하였고, 1975년 주지 도관(道觀)이 중창하였다. 1993년 주지 정도(靜道)가 대웅전을 해체하고 극락전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창룡사의 시설은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은 옥개석을 9층으로 쌓은 것으로 높이가 97㎝에 이른다. 범종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63㎝, 입지름 38㎝의 소형 동종이며 ‘동경시매전제(東京市梅田製)’란 명문이 있다. 이밖에도 월악산 신륵사(神勒寺)에서 조성한 후불탱화 등 5종의 탱화가 전해진다. 신도 수는 약 700여 명이다.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독성도와 산신도를 봉안하고 있다. 유물로는 관세음보살좌상과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 범종이 전해진다. 이 중 관세음보살좌상은 1730년(영조 6)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98㎝, 어깨 너비 47㎝의 크기이며, 속리산 법주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외에도 옛 대웅전에 불상이 여러 개 있었는데, 이 중 아미타불상은 대원사(大圓寺)로 옮겼으나 나머지는 행방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