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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 용기리 금성대군사당(草坪面 龍基里 錦城大君祠堂)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초평면 용기리 금성대군사당(草坪面 龍基里 錦城大君祠堂)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0. 28. 08:20

 

뜻과 의리를 지킨다는 의미로 수의(守義)마을인가? 마을이름 또한 지난역사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수의마을 노인회관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성대군의 사당이 마을이름과 같이 햇살속에서 빛난다.

 

일주문도 바래있습니다 보수가 필요합니다.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왕자로 이름은 이유(李瑜)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전전하다 경상도 순흥에 안치되었으며,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1457년(세조 3) 사사되었다. 이후 1738년(영조 14)에 신원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주위는 깔끔하게 제초되어 있습니다. 후손들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금성대군 (naver.com)

 

금성대군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왕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유(李瑜). 아버지는 세종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1433년(세종 15)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terms.naver.com

 

진천 금성대군 사당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를 두었다. 그리고 성균관장 김경수가 쓴 ‘청당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내부 중앙에 감실을 설치하고 그 안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정면에 삼문을 세우고, 그 밑에 ‘충신묘금성대군흥록대부정민공완산이유배완산부부인전주최씨지묘 을묘삼월일’이라고 쓴 현판을 달았다. 사우의 주위로는 돌과 흙을 섞은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었다.

 

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입니다.

 

금성대군 이유(李瑜)가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피화를 입자 부부인(府夫人) 전주최씨가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그 후 증손 덕천군 이인(李仁)이 초평면 용기리 수의동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에 진천 금성대군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세종의 6남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에 건립되었다.

청당사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미원면 대신리 금성대군제단(米院面 大新里 錦城大君祭壇) (tistory.com)

 

미원면 대신리 금성대군제단(米院面 大新里 錦城大君祭壇)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의 제단이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제단 형태인 ㅁ자형이다. 규모는 앞면 3m, 옆면 4m, 높이 1m이다. 이 제단은 금성

king6113.tistory.com

 

사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의마을의 풍경입니다.

 

영주 금성대군신단(榮州 錦城大君神壇) (tistory.com)

 

영주 금성대군신단(榮州 錦城大君神壇)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영주 금성대군 신단(榮州錦城大君神壇)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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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사우가 초평에 위치한 이유 - 충북과 나의 연결고리 '충북일보' (inews365.com)

 

금성대군 사우가 초평에 위치한 이유

 수양대군이 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단종은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교서는 국왕이 발표하는 문서를 말한다.  "혹은 이르기를, '수양 대군이 장차 과인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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