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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면 가흥리 조병로영세불망비(趙秉老永世不忘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가금면 가흥리 조병로영세불망비(趙秉老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4. 4. 19:58

 

 

 

 

 

[정의]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파현령 조이순(趙頤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김상휴(金相休)의 딸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활동사항]
조병로는 1849년(철종 1)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시작으로 1858년 보성군수가 되고 1862년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밀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홍주목사가 되고 1866년 병인양요 때에 부평부사로서 해안 경비에 힘을 썼다.

1867년 충주목사가 되어 사창(社倉)을 마련하기 위해 각 면에 토교(土窖)를 건조하게 하고 이듬해 충주읍성을 개축하여 1869년 완성되자 당시 충청감사 민치상(閔致庠)이 축성 사실을 알려 포상케 했다. 이때의 축성사적비(築城事蹟碑)가 충주중앙공원 안에 있다. 또 임진왜란 이후 헐어진 충주 관아를 신축했고 1870년 『충주읍지(忠州邑誌)』를 개편하였다.

1871년 상주목사로 교체되어 상주읍성을 수축하였으며 1873년 말미에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만동묘(萬東廟)를 수축하였다. 1875년 나주목사·부호군·동부승지를 거쳐 봉산군수를 역임하였고, 1884년 공조참의·돈녕부도정에 이어 1886년 호조참판에 제수되었다
.

[묘소]
본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부암리에 안장되었다가 후손에 의해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류리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에 충주목사 재직 중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목사조공병로영세불망비(牧使趙公秉老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