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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노영세불망비(李正魯永世不忘碑) 본문
[달천강가에 자리한 충주목사 이정노의 또다른 공적비이다}
[정의]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재(大哉)이며, 호는 사계(沙溪). 아버지는 이근오(李根五)이다.
[활동사항]
이정로는 1858년(철종 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가주서·초계문신(抄啓文臣)·용강현령·부교리·정언·응교를 거쳐, 1863년(고종 1) 『철종실록』낭청(郎廳)·부호군이 되었다. 1870년 성균관대사성 및 각조의 참의를 거쳐 1875년 경주부윤을 거쳐 충주목사로 부임했다.
1880년 이조참판을 거쳐 1891년 도승지가 되고, 예조판서와 의정부좌참찬을 지내고 이듬해 공조판서·예조판서·한성부판윤·의정부좌참찬을 지냈다. 1893년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여 중국의 철도 부설 등을 보고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난 후 형조판서에 이어 이조판서가 되어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 관여했다.
1895년 복수청(復讎廳)을 설치하여 을미사변 때 폐비에 관계된 자들을 정법(正法)할 것을 상소했다. 1896년 궁내부특진관이 되고, 1898년(광무 2) 산릉도감제조로 능 관리를 소홀하게 하여 철도(鐵島) 유배 처분을 받았다가 풀려나 중추원1등의관·봉상시제조·경효전제조 등 궁내부 각 아문의 장을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의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충주목사로 재직 중 선정으로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에 영세불망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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