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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치상영세불망비( 閔致庠永世不忘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민치상영세불망비( 閔致庠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4. 4. 20:33

 

 

 

 

[정의]
조선 말기 공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호(號)는 하당(荷堂). 증조할아버지는 민각수(閔覺洙)이며, 할아버지는 민백준(閔百準)이고, 아버지는 민용현(閔龍顯)이다. 어머니 김씨(金氏)김세순(金世淳)의 딸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다.

[활동사항]
민치상은 1845년(현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며, 1849년(현종 15) 홍문관수찬에 임명되었다. 1850년(철종 1) 진하사은겸세폐사의 서장관으로 나라에 다녀왔다. 1856년(철종 7) 홍문관부응교·예방승지, 1859년(철종 10) 성균관대사성, 다음 해 홍문관제학을 역임하고 이어 도승지에 올랐다.

1863년 철종이 죽자 영의정 김좌근(金佐根)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전교를 받들어 고종을 그의 잠저에서 궁궐까지 시위했으며, 1866년(고종 3) 이조참판이 되었다. 다음 해 공청도관찰사가 되었는데, 재임 중 E. J.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남연군 묘 도굴 사건이 일어났다.

1870년 민비의 척족이라는 정치적 배경에 힘입어 형조판서로 승진했고, 이어 동지겸사은정사로 다시 나라에 다녀와 예조판서·공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74년(고종 11) 호조판서에 시강원좌부빈객(侍講院左副賓客)을 겸하였고, 1876년(고종 13) 판의금부사까지 겸했다. 1878년(고종 15) 이조판서를 거쳐, 1881년(고종 18) 제도의 개편으로 전선사(典選司) 당상에 올랐다. 다음 해인 임오군란 때 반군에게 습격당하여 가옥이 파괴되고 저격당했으나 무사했으며, 1885년(고종 22)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글씨를 잘 썼으며, 청풍팔경(淸風八景)을 읊은 「팔영시(八詠詩)」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재임 중 선정(善政)하여 1870년(고종 7)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에 순상민공치상영세불망비(巡相閔公致庠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당시의 충주목사는 조병로였다. 또한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지곡리 간두문마을에도 영세불망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문목(文穆)이고, 청백리로 칭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