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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읍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曾坪邑 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 본문
날씨가 덥다. 더운 와중에도 벌판에 모들은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오랫만에 다시 찾은 남하리 석불은 언제나 그렇듯 반가운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민속체험관에서 행사에 앞서 주위를 정리하나 보다 주위가 조금은 산만하니 정리가 한참이다.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군(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群)은 증평 시가지에서 청원군 초정 방면으로 가다 남하2리 미륵마을의 민속체험관 옆에 위치해 있다.
이중 가장 큰 불상은 아랫부분이 땅 밑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으나 현재 땅 위에 노출된 높이는 3.5m이다. 머리에는 관대가 있는 비교적 높은 보관(寶冠)을 썼는데, 두 귀 위에 장방형의 홈이 있어 보관(寶冠)에 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나 보아도 참 듬직하다는 표현이 좋다.가까운 거리에 있는 광덕사 석불과 더불어 거불의 느낌이 든다.
크고 원만한 상호에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이마의 눈썹 사이로 백호(白毫)가 양각돼 있다. 두 귀는 길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불두에는 세로로 파손의 흔적이 보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배 위에 붙여 외장(外掌)하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연꽃을 잡고 있다. 양쪽의 팔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어 주목된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두 팔에 걸쳐 흘러내려 배 아래에서 활모양의 주름이 조각돼 있다.
옷무늬의 조각양식이나 수법 및 규모의 장대함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 초기 10세기 때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증평지역에 남아 있는 다른 불상들과의 양식적인 관련성과 신앙형태에 대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이 석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국에 산재된 여러이야기중에 한종류이다.남하2리에는 허리가 잘린 미륵이 있다. 그 옛날 이곳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런데 그가 축적한 부는 악독한 방법을 동원해서 얻은 것이었다. 게다가 부를 축적하면 할수록 더욱 인색해졌고, 욕심 또한 날이 갈수록 심했다. 그런데 그 집의 하인 역시 주인을 닮아 인색할
뿐더러 심술궂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승이 부자에게 시주를 요청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부자는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울리는 목탁 소리가 시끄러워 하인을 시켜 노승을 쫓아 버리도록 했다. 이에 하인은 빗자루를 들고서, “우리주인 나리께서 시끄럽다고 하신다. 딴 데로 가라!”며 스님을 내몰았다. 그러자 노승도“소승은 시주를 받을 때까지 가지 못하겠습니다.”며 완고하게 맞섰다. 이에 주인은“거름이나 한 삽 떠주어라.”라고 하자, 하인은 시키는 대로 거름을 바랑에 퍼주었다. 노승은 아무 말 없이 거름을 받고는, “시주를 했더라면 더 큰 부자가 될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했건만∼”이라며 아쉬운 낯빛을 띠었다. 하인이 노승의 말에 솔깃해 더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노승은“저기 미륵이 부잣집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부밖에 축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미륵의 허리를 자르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며 넌지시 비법을 전해주었다.
하인은 이 사실을 주인에게 알렸다. 주인은 득달같이 미륵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그런데 미륵의 허리를 자르자 하늘에서 느닷없이 벼락이 내리쳤다. 또한 미륵의 허리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미륵의 피가 흘러내려 내[川]가 생길 정도였다.
부자는 이후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이 그만 망하고 말았다[증평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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