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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사락리 경녕군묘(周德邑 社樂里 敬寧君墓)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사락리 경녕군묘(周德邑 社樂里 敬寧君墓)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6. 3. 08:53

2010년에 찾아보고 다시 발걸음을 하니여긴가 저긴가? 머릿속이 어지럽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찾으니 부대시설등이 많이 구비되어 있고 참 좋다.주차장에 있는 화장실 문이라도 개방하여 놓는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혼자만의 생각. 물론 관리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말이다.

 

 

 

경녕군 신도비(敬寧君神道碑)는 방구모랭이에서 안음골로 들어오다 보면 바로 길가에 있다.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난간석을 둘렀으며 그 가운데 세웠다. 기단부는 하대석에 용을 조각하였고, 두 마리의 거북이가 받친 위에 연꽃을 조각 비신(碑身)받침 위에 신도비를 세웠다. 비신은 사면의 너비가 같은 사각형으로 사면에 글씨를 조각하였다. 전면에는 ‘경녕군신도비’라고 비명을 쓰고 왼쪽면부터 비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 부대시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신도비를 보고 조금만 길을 들어서면 관리사및 사당인 명덕사가 자리하고 있고 홍살문이 세워져 있으며 경녕군의 묘가 보인다.길가로 망촛대가 지천이다.

 

경녕군(敬寧君, ?∼1458(세조 4)은 조선 태종의 첫째 아들로 이름은 비(裶), 자는 정숙(正淑)이다. 어머니는 효빈김씨(孝嬪金氏),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관(灌)의 딸이다.
태어날 때 옥상에 백룡이 도사리고 있는 이상한 징조가 나타나 궁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현인(賢人)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천성이 어질고, 어려서부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문에 밝아 양녕대군(讓寧大君)·효령대군(孝寧大君)·세종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조에 걸쳐서 왕실과 국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충성을 다하여 해결하도록 노력하였다.

 

1419년(세종 1)에는 명나라 사신 태감(太監) 황엄(黃儼) 등이 오자 왕자를 대신하여 태평관에서 접대하였고, 또 황엄이 왕자의 사은(謝恩)을 요구하자 사은사(謝恩使)에 뽑혀 북경에 가서 명나라 성조(成祖)로부터 기린·사자·복록(福祿)·수현사(隨現寺)·보탑사(寶塔寺) 등 상서로운 그림 다섯폭과《신수성리대전 新修性理大典》·《사서오경대전 四書五經大典》등과 황금 100냥, 백금 500냥, 말 12필, 양 500두, 비단 50필,명주 500필 등 많은 물품을 얻어왔다

 

세종 초에 기생 일타홍(一朶紅)과의 염문이 문제되어 대간들로부터 여러 번 탄핵받았으나 세종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1430년에 대광보국(大匡輔國)이 되고, 세조가 즉위하자 충주로 피하여 여생을 마쳤다. 묘지는 충주 황금산(黃金山)에 있고,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경녕군부인김씨묘소(敬寧君 夫人 金氏 墓所)는 도지정기념물 99호로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산 15-1에 위치해 있다. 청풍김씨는 좌찬성 김관(金灌)의 딸로서 태종 16년(1416)2월 기축(己丑)일에 경녕군과 혼인하였다. 태종께서는 경신택주(敬愼宅主)의 당호와 안산군 부인(案山君 夫人)의 첩지를 내리었다.

 

감곡면 영산리 경녕군부인김씨묘소(甘谷面 嶺山里 敬寧君夫人金氏墓所) (tistory.com)

 

감곡면 영산리 경녕군부인김씨묘소(甘谷面 嶺山里 敬寧君夫人金氏墓所)

감곡면 영산리 공산정마을을 지나 잔자골로 접어들면서 오른쪽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경령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소입니다.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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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경녕군의 부인인 김씨의 묘소입니다.

경녕군부인 김씨묘소는 세종 32년(1450)4월15일에 서거하여 문종이 상구(喪具) 일체(一切)를 하사하여 이곳에 예장 되었다. 세조4년(1458) 삼한부부인(三韓府夫人)에, 고종 9년(1872) 청원부부인(請願府夫人)으로 추봉 되었다.
이 묘소는 거의 사각형의 장방형(長方形)이 묘제의 특징이다. 그리고 등석(燈石, 長明燈)과 문인석(文人石)의 흉부(胸府) 등에 특이한 조각문양은 왕족묘소 연구에 좋은자료가 된다

 

불정면 지장리 김관묘소(佛頂面 芝莊里 金灌墓所) (tistory.com)

 

불정면 지장리 김관묘소(佛頂面 芝莊里 金灌墓所)

충북 괴산군 불정면 문무로세곡길 56 (지장리)에 있는 조선조 문신인 김관의 무덤입니다.김관묘소 입구를 표시하는 이정표 입구에는 청풍김씨 정려비가 1기 자리하고 있다. 근래에 새로 세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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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녕군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족보의 기록에 따라 후손이 묘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장마로 인하여 묻혀 있던 묘비를 발견함에 따라 경녕군 묘가 확실하게 밝혀졌다. 1872년(고종 9) 고종이 승지를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그 시기에 묘 앞의 석물이 갖추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녕군묘(敬寧君墓)도 풍수지리사상으로 보면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명덕사 앞에 작은 연못이 있는 것이다. 연못은 옥녀가 비단을 짤 때 실을 씻을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에 있어야 한다. 이묘는 어느 때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실전(失傳)되었다고 한다. 물론 족보에는 기록이 있어서 후손 한 사람이 묘를 찾기 위하여 이곳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이 릉(陵)에 놀러가자고 하여 이곳에 와보니 큰 무덤이 폐허화된 상태로 있었다. 이곳이
자기가 찾던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장마로 인해서 묘 부근이 무너졌을 때 묘비가 묻힌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묘비의 발견으로 경녕군의 묘임이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구묘표는 비좌 직수의 형태로, 크기 42×16×124㎝인데, 비제는 훼손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신묘표는 지붕돌 102×77×50㎝, 비신 51.5×29×156㎝, 대석 105×78㎝의 크기이다. 전액(篆額)은 ‘태종대왕자(太宗大王子)’라 전서체로 쓰고, 비제(碑題)는 ‘경녕군삼한공시제간추봉령종정경지묘(敬寧君三韓公諡齊簡追封領宗正卿之墓)’라 하였다. 17대손 이건영(李健永)이 다시 건립하였다.

 

풍수적으로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 홍살문 앞쪽에 인공 연못을 조성하였고, 사우인 명덕사는 3칸 맞배지붕의 건축물로 묘역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있다. 묘역에는 210㎝ 정도의 망주석 1조, 215㎝ 크기의 무인상 1조, 193㎝ 크기의 문인상이 안면이 크게 훼손된 상태로 1조 있다.한편 190㎝ 정도의 석등, 91×135㎝ 크기의 석양(石羊) 1쌍이 경녕군 묘를 지키고 있다. 경녕군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구묘표, 신묘표, 석양, 석등 등이 있다. 이중 문인상과 상석을 제외한 나머지 석물은 최근 도난을 당하여 종중에서 새롭게 조성하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