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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면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蘇台面 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본문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계의 위축으로 불사(佛事)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부도의 건립도 왕실과 관련된 일부 고승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청룡사지에는 고려 말기 주요하게 활약하다가 1392년 9월 입적한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1320~1392]의 부도를 비롯하여 탑비·석등 등이 남아 있어 당시 사찰의 위상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보각국사 혼수는 1392년 7월 태조 이성계의 즉위에 축하를 표하고 곧바로 병을 핑계 삼아 충주 청룡사로 하산하였다. 1392년 9월 18일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세수 73세, 법랍 60세)하였는데, 이에 문도들이 연회암(宴晦庵) 북쪽 산기슭에서 화장하고 유골을 수습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보각국사의 부음을 듣고 내신(內臣)을 보내서 조문하고 부도 건립 공사를 감독하도록 했다. 태조는 또 시호(諡號)를 보각(普覺), 탑호(塔號)를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내리고, 1392년 12월 청룡사 북봉(北峰)에 부도를 세워 유골을 안치하였다. 이와 같이 보각국사는 여러 왕들로부터 높은 예우를 받았고, 국사를 역임하였기 때문에 국왕이 직접 후원하여 부도가 건립되었다. 하대석은 상면에 단판 16엽의 세련된 연화문을 장식하여 공양의 의미를 더하였다. 연화문 안에는 좌우 대칭형의 별도 화형 문양을 장식하여 화려함이 돋보인다. 중대석은 평면 팔각으로 각면에 안상을 새긴 후 그 안에 운룡문(雲龍紋)과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사자상과 용문은 돋을새김이 강하여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으며 수호의 의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상하로 대칭되도록 연화문을 장식하였고 상부에 높은 갑석형 받침을 마련하여 탑신석을 받치도록 했다. 탑신석은 상대석 상면에 팔각의 홈을 마련하여 삽입·고정되도록 했으며, 평면 팔각으로 모서리에는 용(龍)이 기둥을 감싼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기둥은 중국에서 원나라 이후 유행하기 시작하여 명대(明代)에 크게 성행한 양식이었다. 탑신석 각 면에는 1구의 조각상을 배치하였는데 두꺼운 갑옷을 입고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부도에 대한 강한 수호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옥개석은 하부에 넓은 받침과 추녀와 사래가 번안되었으며, 처마부를 치켜 올려 경쾌한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낙수면은 유려한 곡선을 이루면서 처마 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루부는 높게 돌출시켰는데 아래쪽에 용두를 새겨 마치 용이 마루를 타고 하강하는 듯한 형상이다. 이와 같이 마루부에 용두가 새겨진 경우는 조선 초기 무학대사 부도를 비롯하여 국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승려들에 한하여 나타나고 있다. 옥개석 상면에는 단판의 연화문이 새겨져 상륜부를 받치도록 했다. 상륜부는 일부 부재가 결실되어 원형을 알기는 어렵지만, 보륜과 화염형 보주 등이 남아 있어 원래는 여러 부재들이 결구되어 상당히 고준하고 장엄적인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각국사 혼수가 국사를 역임한 승려였으며, 태조 이성계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왕릉의 석물 배치에 준하는 배치법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부도는 1976년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또한 부도의 양식이 왕실과 관련된 석조물들과도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어 국왕이 파견한 석공에 의하여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은 회암사지 무학대사 홍융탑과 함께 조선 초기의 부도 양식을 대표하는 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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