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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신평리민동량효자각(金旺邑 新坪里閔東亮孝子閣) 본문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정려각. 민동량의 묘는 원남면 하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민동량은 본관은 여흥, 자는 군삼, 호는 송암이다. 1806년(순조 6)에 정려와 복호(復戶)가 내려졌다. 7, 8세 때부터 부모가 병이 나면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으며 좋은 약이라면 가리지 않고 구하여 썼다. 부모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피를 내어 먹이려고 왼손 네 손가락을 잘랐으며, 대변을 살펴 병세를 짐작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부모가 세상을 뜨자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다. 처마 끝에 처마 서까래와 처마 서까래의 끝에 덧얹는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인 부연(附椽)을 걸어 꾸몄다. 처마 끝 서까래가 2단으로 되어 있는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단청이 잘 되어 있으며 효자각 주위로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다.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민동량지문상지육년병인삼월일명정(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閔東亮之門上之六年丙寅三月日命旌)'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
민동량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5세 때 글을 읽고 그 뜻을 해독하니 마을 사람들이 “민씨 문중에 신동이 나타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효행 또한 지극하여 민동량이 8세 때 그의 노모가 병석에 눕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간호하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그 지극한 효행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내나 하인이 들 시중마저 민동량 스스로 하는데 정성을 드렸다. 그러자 민동량은 “지저분한 일일수록 남에게 시키지 않아야 정성을 다하는 것이고, 어버이 눈앞에 자식이 있어 보이도록 해야 마음을 안정할 수가 있는 법이니 어찌 그 곁을 떠나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는 감동하며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병증이 심상치 않아 노심초사하고 있던 민동량은 괴산읍 내에 있는 한약방에 명약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때는 벌써 초경을 넘겨 밖은 이미 깜깜해진 뒤였다. 그러나 민동량은 행전을 차리고 길 떠날 차비를 갖추었다. 그러자 민동량은 “아버님 병환이 경각에 이르러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데 어찌 지체할 수 있겠소?” 하고는 발길을 재촉하여 떠났다. 성황당 느티나무 밑에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눈에 등잔불 같은 인광을 켜고 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마음이 급해진 민동량은 큰 소리로 꾸짖으며 “나는 당골에 사는 민동량으로 지금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해 괴산 땅으로 명약을 얻으러 가는 길이다. 그러니 가는 길을 지체하지 말도록 썩 길을 비켜라!”라고 하였다. 호랑이 하는 거동을 알아 챈 민동량은 잠시 망설이다가 호랑이 등에 탄 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일더니 곧 다시 잠잠해졌다. 민동량은 황급히 호랑이 등에서 내려 개울을 건너 약방에 들어가 명약을 구한 후 다시 향교 근처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까의 그 호랑이가 아직도 냇가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민동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한번 몸을 움직여 솟구쳐 바람을 일으키더니 곧 민동량을 처음 만났던 당골 성황당에 그를 내려놓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민동량이 집에 도착했을 무렵은 불과 밥상을 받아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숭늉을 마실 정도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서방님. 어찌 길을 떠나지 않고 되돌아오셨어요?” 그러자 민동량은 “자세한 얘기는 이따 할 테니 어서 약을 달여 주시오.” 하며 약 다리는 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이리하여 그날 밤 무사히 아버지에게 명약을 올릴 수 있었다. 그 후 민동량이 세상을 떠난 지 백년 만인 1806년(순조 6) 민동량의 효행이 상계되어 정려가 내려지고 호조좌랑을 추증하였다. 민동량의 정려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 석정에 전한다. 효자 이야기 중 하나인 「민동량과 호랑이」는 단지(斷指) 모티브에 의한 효행의 강조와 효자인 민동량을 도와주는 호랑이 모티브가 전후반의 주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등장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효성이 지극한 인물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효성으로 정려문이 내려졌다는 실재 증거를 제시하여 유교 덕목인 효사상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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