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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신평리민휘계·민정현효자각(金旺邑 新坪里閔徽繼·閔鼎顯孝子閣) 본문
민휘계·민정현 효자각은 민씨 가문의 두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이다. 민휘계는 가난하였으나 글을 좋아하고 주경야독을 했다. 학행(學行)이 좋고 부모에 효심이 지극했다. 1808년(순조 8)에 감영(監營)에서 상계(上啓)하자 왕이 특명을 내려 민휘계의 행적을 간행토록 하였다. 이 책의 이름은 『존주록(尊周錄)』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부친이 엄동설한에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자, 생선을 구하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생선을 열 마리나 준 사람의 덕으로 부친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 민정현의 효행이 특출 나자 1812년 겨울, 향당동지인(鄕黨同知人) 400여 명이 모여 활효(活孝)를 보고하여 수령 방백이 연명으로 민정현의 행적을 상신하였다. 맛배지붕의 목조와가로, 단청이 곱고 아담하게 단장되어 있다. 민휘계와 5대손인 민정현의 정려로, 현액만 다르다. 정려의 오른쪽 칸에는 민휘계의 효자 편액을 걸었고, 왼쪽에는 민정현의 편액이 걸려 있다. 민정현의 편액에는 ‘표정학생여흥민공정현효자지문수정기원후육년정해이월(表旌學生驪興閔公鼎顯孝子之門崇禎紀元後六年丁亥二月)’이라고 쓰여 있다. |
민정현에 대하여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민정현(閔鼎顯)[1783~1812]은 3세에 글을 읽고 10세에 경서를 통달하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七長寺)에서 노승과 같이 경서(經書)와 시부(詩賦)를 토론하는데 막힘이 없어 30여 명의 중들이 경탄하였다. 학식이 탁월하여 먼 곳에서도 학우(學友)들이 모여들었다. 좌중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민정현이 말한 대로 9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민정현의 후손이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살고 있다. 1812년(순조 12) 12월 향당동지인(鄕黨同知人) 400여 명이 모여 효행을 보고하니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 정려에는 '표정학생여흥민공정현효자지문숭정기원후육정해이월(表旌學生驪興閔公鼎顯孝子之門崇禎紀元後六丁亥二月)'이라 기록되어 있다. |
민휘계는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밤에는 경전(經典)을 읽으면서 생활하니 몸에 걸칠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자고 같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아 집안이 언제나 화목하였다. 아버지가 72세에 병이 위독하자 가난을 무릅쓰고 간병을 하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 44세에 죽었다. 1808년(순조 8)에 조정에 민휘계의 효행이 알려졌고, 특명으로 그의 행적을 간행하도록 하여 『존주록(尊周錄)』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그 해 8월 19일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 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고,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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