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금왕읍 신평리민휘계·민정현효자각(金旺邑 新坪里閔徽繼·閔鼎顯孝子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금왕읍 신평리민휘계·민정현효자각(金旺邑 新坪里閔徽繼·閔鼎顯孝子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18. 11:21

 

 

 

 

 

 

 

 

 

 

 

 

 

 


  • [정의]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민휘계민정현의 정려문.

  • [개설]
  • 민휘계·민정현 효자각은 민씨 가문의 두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이다. 민휘계는 가난하였으나 글을 좋아하고 주경야독을 했다.

    학행(學行)이 좋고 부모에 효심이 지극했다. 1808년(순조 8)에 감영(監營)에서 상계(上啓)하자 왕이 특명을 내려 민휘계의 행적을 간행토록 하였다.

    이 책의 이름은 『존주록(尊周錄)』이다.

    민정현은 유아기 때부터 부친이 병에 걸리면 하늘에 기도하며 쾌유를 빌었고, 변을 맛보는 등 정성을 다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부친이 엄동설한에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자,

    생선을 구하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생선을 열 마리나 준 사람의 덕으로 부친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

    민정현의 효행이 특출 나자 1812년 겨울, 향당동지인(鄕黨同知人) 400여 명이 모여 활효(活孝)를 보고하여 수령 방백이 연명으로 민정현의 행적을 상신하였다.

  • [형태]
  • 맛배지붕의 목조와가로, 단청이 곱고 아담하게 단장되어 있다. 민휘계와 5대손인 민정현의 정려로, 현액만 다르다.

    정려의 오른쪽 칸에는 민휘계의 효자 편액을 걸었고, 왼쪽에는 민정현의 편액이 걸려 있다.

    민휘계의 편액에는 ‘효자순조칠년무진증조봉대부동몽교관여흥민공휘계명정(孝子純組七年戊辰贈朝奉大夫童蒙敎官驪興閔公徽繼命旌)’이라 적혀 있고,

    민정현의 편액에는 ‘표정학생여흥민공정현효자지문수정기원후육년정해이월(表旌學生驪興閔公鼎顯孝子之門崇禎紀元後六年丁亥二月)’이라고 쓰여 있다.

     


    민정현에 대하여
  • [정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 [가계]
  •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실(元實), 호는 한송(寒松). 민휘계(閔徽繼)의 5세손이다.

  • [활동사항]
  • 민정현(閔鼎顯)[1783~1812]은 3세에 글을 읽고 10세에 경서를 통달하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七長寺)에서 노승과 같이 경서(經書)와 시부(詩賦)를 토론하는데 막힘이 없어 30여 명의 중들이 경탄하였다.

    학식이 탁월하여 먼 곳에서도 학우(學友)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부모에게 효행이 극진하였으나 자세한 효행은 기록되지 않고 있다. 1812년(순조 12) 6월 “나는 오는 9월 9일 저 세상으로 갈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였다.

    좌중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민정현이 말한 대로 9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민정현의 후손이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살고 있다.

  • [저술 및 작품]
  • 저서로 『한송집(寒松集)』이 있다.

  • [묘소]
  •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다.

  • [상훈과 추모]
  • 1812년(순조 12) 12월 향당동지인(鄕黨同知人) 400여 명이 모여 효행을 보고하니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

    정려에는 '표정학생여흥민공정현효자지문숭정기원후육정해이월(表旌學生驪興閔公鼎顯孝子之門崇禎紀元後六丁亥二月)'이라 기록되어 있다.

     


  • 민휘계에 대하여[정의]
  • 조선 중기의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 [가계]
  •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미윤(美胤), 호(號)는 호암(湖巖). 민홍로(閔弘魯)의 아들이다.

  • [활동사항]
  • 민휘계는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밤에는 경전(經典)을 읽으면서 생활하니 몸에 걸칠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자고 같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아 집안이 언제나 화목하였다.

    아버지가 72세에 병이 위독하자 가난을 무릅쓰고 간병을 하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 44세에 죽었다.

  • [묘소]
  • 묘소와 정려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다.

  • [상훈과 추모]
  • 1808년(순조 8)에 조정에 민휘계의 효행이 알려졌고, 특명으로 그의 행적을 간행하도록 하여 『존주록(尊周錄)』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그 해 8월 19일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 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고,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5대손인 민정현과 같은 문(門)에 현액만 달리하고 있으며, 현액에는 ‘효자순조칠년무진증조봉대부동몽교관여흥민공휘계명정(孝子純祖七年戊辰贈朝奉大夫童蒙敎官驪興閔公徽繼命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