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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8/01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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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선조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미륵석불입니다.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습니다. 머리에 팔각의 보개를 얹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팔각의 넓은 보개는 석등의 옥개석을 연상하게 한다. 보개의 아랫면 가장자리에는 낙수 홈이 선으로 음각되었으며, 중앙에 원형으로 돌출부를 두었다. 이 돌출부가 불신의 머리에 닿아 있어 마치 육계처럼 보인다. 머리는 나발이고 얼굴은 넙적하여 풍만하다. 눈은 반개하고 있고 입술은 도톰하며 턱 아래에 이중턱을 표현해 후덕함을 나타내고 있다. 귀는 길게 표현해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체보다 어깨가 넓어 당당한 느낌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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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청용3리 마을입구 안쪽에 있는 선돌입니다. 선돌의 기능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첫째, 암석·칠성·성기 숭배에서 나타나듯이 다산·생산·장수를 바라는 풍요의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벽사(辟邪)·수구막이의 역할을 하는 선돌은 수호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이것은 1쌍으로 있든지 성(性)의 구별이 뚜렷한 점이 특징입니다. 셋째, 죽은 사람을 상징하거나 무덤을 표시하는 무덤돌의 기능의 역할도 합니다. 청용리의 선돌의 역할은 수호의 기능을 상징하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안녕과 더불어 병마나 액운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맞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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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청용리 마을입구에 세워진 선돌입니다. 수구막이 개념으로 마을의 안녕과 복을 지켜준다는 일종의 벽사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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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외용에 용안역이 관거(官距) 45리에 있었고 충주 연원역(連原驛) 소속으로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大馬) 2필, 복마(卜馬) 5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충원현조(忠原縣條)에 용안리는 당시 주민이 95호에 남자가 278명, 여자 369명 도합 647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안용안[內龍洞]과 외룡동(外龍洞)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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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니면 학성리 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85년 단위단지에서 쌀 증산이 최고였으므로 최우수상을 받은 기념으로 학성마을 주민들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세운 기념탑입니다. 기념탑에는 85최우수쌀대단위과학영농단지수상기념탑( 85最優秀쌀 大單位科學營農團地受賞記念塔)이라고 써있으며 중원군 신니면 학성단지(中原郡 新尼面 鶴城團地)라 하여 지정당시의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불견리(不見里)와 학성리(鶴城里)의 이름을 따서 견학리(見鶴里)라 하였다.견학리는 일찍이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가의 양옆 너른 들에 형성된 마을로,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불견리·학성리·마제동(馬蹄洞)과 주류면(周柳面)의 창전(倉田)1리 일부를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