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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탄부면 임한리 솔밭에 있는 유홍선생의 시비(詩碑)니다. 하나는 주사 마유명과 주고받은 광국시이며 또 하나는 아버지의 친구분의 생신축시입니다. 주사마유명화답광국시( 主事馬維明和答光國詩)입니다.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마(黃麻)로 구궐(九闕)을 돌이키게 하니 밝은 해가 나의 작은 정성을 비춰주네 한시(漢市)는 신풍(新風)의 술이요 태성(泰城)에는 세류(細柳)의 진영(陳營)이라. 귀향 길에는 흥이 저절로 나고 구슬같은 곡조로 꾀꼬리는 환송하는 듯 하네 압록강가에 봄이 깊으니 아름다운 경치가 십리(十里)에 환하구나 선군사마동기생신축시( 先君司馬同期生辰祝詩) 가을 국화꽃은 축수의 자리에 빛났고 기쁘고 즐거움이 아름다운 생신에 미치네 옥을 굴리는 듯 맑은 창곡은 흐르고 산이 기울도록 윗분은 취하셨네 의기양양한..
군서면 사기점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석장승과 돌탑입니다. 원래는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목장승을 세웠었는데 지금은 석장승으로 교체 해서 세워놓았습니다. 석장승 옆으로는 수살제개념의 돌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이다. 청안현의 동헌건문로 태종 5년(1405)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1915년에도 수리가 있었고, 한때 청안지서로 사용되어 변형이 있었으나 1981년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홑처마에 공포를 짜지 않은 형태이다. 주춧돌은 다듬은 돌과 자연돌을 함께 사용하였고, 둥근 기둥에 일부 네모 기둥을 세우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조선 후기의 동헌 건물에 비하여 격식을 낮추어 지은 검소한 건물이다.
구봉영당은 조선 고종 32년(1985)에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인(左翼功臣) 1등으로 책록되고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진 문충공(文忠公)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경기도 양주의 종가에서 옮겨 봉안한 사당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문중에서 매년 3월 5일과 9월 5일에 향사한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세조 1년(1445)에 그린 좌익공신상(左翼功臣像)으로 추정되는데,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110cm, 세로 167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다. 오른쪽에 보한재 신숙주의 진영(眞影)임을 알리는 (朝鮮領議政高靈府院君諡文忠號保閑齋申叔舟字부翁眞)이라는 제자(題字)가 있고 왼쪽에 신숙주가 죽은지 75년 후에 다시 칠하였다는 (成廟乙未公卒後七..
수살제라 함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 주는 신인 동신(洞神)에게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정월 대보름날에 서낭당, 산신당, 당산(堂山) 따위에서 지낸다. 가덕면 인차리 안말수살제 표지석입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차일피일 미루웠던 마음이 미워서일까? 사정리 옥개석은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다. 몇 번이고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지만 볼수가 없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 겠지만 인적이 끊긴 마을에는 개들의 짓는 소리만 가득하다. 담장 밑에 있는 석탑부재를 찾으려고 했지만 볼수가 없었다. 마침 길에서 만난 동네주민에게 여쭤보니 안보이는지 꽤 되었다고 한다. 아마 누군가의 손을 탄 모양이다.저 마늘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밭정리를 하면서 다른곳으로 치웠나? 한번 더 발걸음을 해야할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발걸음을 하여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을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정리사지 라는 명맥을 유지해주던 옥개석은 사진속에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또 어디선가 이 곳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