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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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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의약박물관에 비치되어 있습니다.약종상영업(藥種商營業)간판으로 일종의 약국을 한다는 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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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의약박물관에 비치되어 있는 약종상수험강의록 제1호입니다.일제강점기 동안 약종상은 약품 판매를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시험에 합격하고 경찰관서로부터 영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약종상수험강의록'은 1940년 9월 첫 호가 발행된 이후 지속적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 도쿄에서 인쇄되었고 일본어로 작성되었습니다. 책자는 약종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법규, 독극물을 포함한 다양한 약품에 대한 강의, 약종상 시험 절차 및 개업에 필요한 서류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약종상수험강의록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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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우암송시열이 서재를 짓고 글을 가르치던 곳입니다.후세에 우암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글을 가르치는 한천서원이 세워졌다가 고종초에 철폐된 후 유림들이 1910년에 한천정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월류봉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 2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영동 한천정사 - Daum 백과 영동 한천정사우암 송시열(1607∼1689) 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집이다. 원래는 그를 배향하는 한천서원이 있었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후학들이 유림회(儒林會)를 결성,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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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궤는 일반적으로 약재를 보관하기 위해 뚜껑이나 문짝이 달린 직육면체 형태의 나무 상자를 의미합니다. 독극약궤는 독약과 극약을 분리하여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안전을 고려하여 내부에 추가 뚜껑을 설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상자의 표면에는 '독약', '극약', '극성약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독약에는 웅황, 신석, 경분 등이, 극약에는 파두와 부자가, 그리고 극성약품에는 수은 등이 흰색 글씨로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독극약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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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냥을 나가거나 행차를 할 때 지니고 다니던 휴대용 약상자입니다.붉은나무와 푸른끈으로 장식을 하였으며 그는 음양을 나타내는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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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란 유지(遺址) · 유적(遺蹟) · 구기(舊基)와 같이 ‘남긴 터(자취)’ · ‘옛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 곳, 또는 순절(殉節)하거나 귀양살이하였던 곳을 가리킨다. 고려시대까지는 유허비라는 명칭의 비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시대에는 유허비를 비롯하여 유지비(遺址碑) · 구기비(舊基碑)라는 명칭의 비가 적지 않게 조성된다. 경기도 개성에 ‘고려충신정몽주지려(高麗忠臣鄭夢周之閭)’라는 문구와 입비연대(1530년, 중종 25)만을 간단히 새긴 비는 유허비의 성격을 띤 초기의 예라고 하겠다.충청남도 홍성군 · 논산시의 성삼문유허비, 경상북도 경주시의 김유신유허비, 최치원 독서당(讀書堂)유허비, 신라효자 손순(孫順)유허비, 제주시의 송시열 적려(謫廬)유허비와 서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