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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사정리 마을 이름이 있게 한 사기점은 고려 때부터 사기를 구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곳곳에 자기 파편이 흔한데 밭을 일구고 땅을 파헤쳐 지금은 사기를 구웠던 가마터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기점에는 또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절터 흔적은 한 가정집에 남아 있는데 기록이 없어 절의 이름이나 창폐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현재 1개씩 남아 있는 탑 옥개석과 장대석으로 보아 고려때 유행하던 양식이어서 고려시대의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행정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이 13대 이상 살고 있다. 행정마을 입구에는 마을에서 쓰던 연자방앗돌이 있고, 청년들이 돈을 모아 만든 유래비가 오가는 이를 반긴다. 청년들은 또 군서-옥천읍간 37호 국도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살구나무를 심어 마을의 옛 지..
군서면 사정리 사기점 마을입구에 있는 강인숙의 불망비입니다. 강공인숙불망비( 姜公寅淑不忘碑 )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을발전에 열심을 내었던 강인숙의 공을 잊지않기 위하여 마을입구에 세웠습니다. 옆에는 사기점마을 유래비가 서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임인년(壬寅年)으로 비석등의 상태로 보아 1962년으로 추정됩니다.
군서면 사정리 마전마을 앞에 있는 비석 2기입니다. 마전동(麻田洞)은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가인 토정 이지함 선생이 얽힌 전설을 간직한 곳입니다. 군서면에는 군서 8명당이란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작약미발(芍藥未發, 함박꽃 봉오리 모양의 지형)’이고 사정리와 뒷산인 홍산의 형세가 그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전마을 앞에는 1914년에 세운 김기영선생과 1930년에 세운 김성희선생의 송덕비가 나란히 있다. 김기영선생과 김성희선생은 군서면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풀어 세금을 대신 내주고, 양식을 주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오위장김공기영송덕비( 五緯將金公基榮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大正3年(1914)입니다. 김기영 (1825.12.3 ~ 1914.12.16..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 사거리에 위치한 미성식당 햔켠에 자리하고 있는 군수를 지낸 한상욱의 청근선정비입니다. 한상욱의 옥천군수 재임기간은 1966.03.29 ~ 1968.04.30일 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무신3월(1968)입니다.주민일동의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군수한후상욱청근선정비( 郡守韓侯相彧淸勤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오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풍수설에 군서 8명당 중의 하나인 ‘오동제월(梧桐霽月)’이라는 명당이라 하여 오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동리는 1908년 군서면을 일소면, 이소면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군서면으로 통합한 후인1930년대 중반까지도 오동리에 군서면사무소와 군서주재소가 있었다. 군서면사무소는 1935년께 현재의 소재지로 이전했다. 오동리는 특히..
청안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주민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유적비. 3·1독립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어가던 중인 3월 중순부터 청안에서도 만세시위가 계획되고 있었다. 청안의 이태갑, 김수백, 신강면 등은 3월 30일 오후 3시 반경, 청안 장날을 이용하여 장터에 모인 2,000여 군중을 선도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우편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경찰은 주도자를 체포하여 청안경찰서 주재소로 연행하자 격분한 시위군중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제 경찰은 충주에서 급파된 수비대와 함께 무차별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90년 1월 1일 괴산군에서는 3·1독립운동을 일으킨 청안 면민의 독립정신을..
낭성면 관정리에 있는 묵정사는 1971년에 신덕린(申德隣), 신포시(申包翅), 신장(申檣), 신식(申湜), 신용(申涌), 신집(申潗)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3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육현사(六賢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사제문(思齊門)이라는 현판을 내걸은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이맛돌에는 묵정사원(墨井祠院)이라고 각자되어 있다. 신집은 조선 전기의 효자입니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종산(種山)이다.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나갔다가 청요직을 거쳐 감사를 역임한 신용(申涌)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신득치(申得治)이다. 1684년(숙종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