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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미원리에 있는 이 충효각은 1801년(순조 1)에 충효로 지평(持平)에 증직된 만은(晩隱) 홍주화(洪冑華)의 충효각에 1806년(순조 6)에 충효로 참판(參判)에 증 직된 그의 할아버지 만계(晩溪) 홍석무(洪錫武)와 1819년(순조 17)에 효부로 명정 된 그의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 등 3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이다. 지 금의 충효각은 1967년에 중수하고 1986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3인의 충효문 편액을 걸었다. 정려 안에는 1967년에 판각한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으며, 앞에 1986년에 세운 사적비와 중수비가 있다. 홍석무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호는 만계(晩溪), 본관은 남양이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충주입니다.충주를 세가지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담배를 만드는 황색엽연초를 상징하는 노란색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상징하는 빨간색그리고 충주를 끼고 돌며 언제나 시원했던 남한강의 물색깔인 파랑색이었지요그래 그 세 색깔을 삼원색이라고 불렀지요남한강 강가는 어린시절 휼룡한 강수욕장이었고 피라미등 물고기를 많이 잡았었지요.가끔씩 한 여름이면 아버지는 리어카에 솥등을 실고 가족들이 강가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강가에 솥을 걸고 어머니는 나무밑에서 점심으로 수제비를 만들곤 하셨지요.그 수제비와 함께 꼭 들어가던 것이 강에서 잡은 올뱅이 였습니다.다슬기라는 표준어가 있지만 올뱅이라는 말로 더 친숙함을 느꼈답니다.아욱을 양껏 넣고 올뱅이를 끓인물에 된장을 풀고 대파를 썰..
비 내리는 미륵사지를 찾아 보았습니다.미륵부처의 점안식 행사로 바쁜데 비가 내리네요.다시 태어나실 미륵부처님 모습을 몇 장 담아 보았습니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팔일오 광복으로 방방곡곡에서는 서광이 비췄고 마음속에는 기쁨으로 가득찼다.그러나 뜻밖에도 국토는 남북으로 갈라졌고 드디오 육이오 참변이라는 동족간의 싸움은 시작되였다.포악무도한 공비들은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서 선량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재산을 파괴하는 등 만행을 일삼아 왔다.이에 분개한 공은 의용경찰대 토벌대장으로써 의용투사들과 함께 미동산,좌구산,무성골,화창등지에서 적을 섬멸 또는 사로잡는 공을 세웠으며 일천구백오십일년 삼월에는 수백여명의 무장공비들을 무찌르고 물리치는 수훈을 세웠으며 지리산 토벌대장으로 발탁등용되여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딴세상으로 가셨으니 슬프다.공의 전적은 전사에 길이 빛날것이로되 한낱 무명용사 숨은 전우으로써 애국애족의 귀감이 되시었기에 후세 사람들..
수안보에 미륵사지를 찾던 날.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점안식 행사가 있다는 현수막만 외로운 사지.조금은 을씨년 스러운 오후였다.세상사 관심 없으신 듯.가을비 우산도 없이 온 몸으로 맞는 석불님.조금은 따스해지라고 화사창 사이로 외로움을 달래본다.가을비만 내리는 미륵사지조용하다.외로움의 향화가 피어오른다. 2024.10.19.수안보면 미륵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