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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금암리 (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호천(虎泉)이 자리하고 있는 금암2리는 옥천전씨가 대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금암2리는 목시(목쇠)라 부르며 적하리 부릉개 북쪽과 금암리 압촌(남쪽)사이에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앞인 금강가에 있는 목담(鶩潭)호수에 따오기와 오리떼가 많아 집오리 목(鶩)자를 써서 목소리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 목소에서 목쇠로 변화히고 목쇠가 한자화하여 목금리(木金里)로 되였다가 이후 부르기 쉽게 목시가 되였다. 호천은 전엽의 효자문 길건너편에 있다.지금도 물이 나와 농업용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호천은 전엽이 시묘살이를 할때 날씨가 가물어 식수로 곤란을 겪을때 호랑이가 나타나 앞발로 땅을 긁어서 전엽은 기이하게 여겨 호랑이가 앞발로 긁은 곳을 보니 생수가 솟으므로 식수부족을 면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또한 식수부족으로..
호천 앞에 위치한 전엽효자각과 관련이 있는 샘이다 일명 효자샘이라고도 불리우며 전엽선생이 시묘살이를 할 때 식수가 없어 고생을 할때 어느날 호랑이가 나타나 땅을 긁어 샘을 솟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샘이다 현재도 잘 보관되여 있으며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옥천..
동이면 금암리 압구정마을 지하도로를 벗어나 금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오재익의 공덕비이다
이 양신정은 1545년 인종 원년 송정 전팽련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와 있을때 본인이 독서도하고 글도 가르칠 수 있도록 금강가에 있는 목담호수가에 세운 것으로, 1597년 선조30년 병화로 불타없어진 것을 1620년 광해군12년에 다시 지었으나, 1733년 영조9년에 무너져 없어졌..
동이면 금암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마을 중심 언덕위에 있다. 주위의 잡풀과 나무등으로 인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금암리는 군동면(郡東面) 용암리(龍岩里)라 불리던 마을이며, 1739년 기록에는 군동면 용암리에 47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기록에는 55호에서 15세..
오필렬은 자는 봉여鳳汝, 호는 운암雲岩,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1858 년(철종 9) 동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문학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인근 마을 영재 들의 교육에도 힘쓰니, 그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이 수백에 이르렀다. 그는 효행은 말로만 좋은 음식 과 의복 등으로 봉양하는 양구養口 보다 마음과 뜻을 따르는 양지養知 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 부 모를 섬길 때는 항상 기쁜 얼굴을 하고 슬픈 낯빛이나 성난 낯빛을 삼갔다. 또한 부드럽고 공손한 태 도로 부모를 대하였으며, 부모의 뜻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았다. 특 히 아버지가 물고기를 즐겨 십 리,백 리를 마다하지 않고 구해서 봉양하였다고 한다. 이 후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밤낮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