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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내북면 이원리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본래 보은군 내북면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문라원(門羅院)이 있었으므로 원마을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운동(白雲洞), 웅곡(熊谷), 누곡(摟谷)을 병합하여 이원리(泥院里)라 하고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1934년 중초리(中草里)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되여 소재지가 되었으나 1984년 다시 창리(倉里)로 옮겨갔다. 자연마을 곰-골(熊谷)[마을] 이원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곰이 이 마을 부근에 많이 살았고 자주 나타났다고 함. 다락-골(樓谷)[마을] 이원 서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에 다래나무가 맣았다 함. 지금도 ‘큰곡골’에는 다래나무가 많다고 함. 도장-이(道場)[마을] 곰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원님이 청주 왕래 도중 쉬어가면서 이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석창문(石昌文) ( 1886. 7. 6.~1908. 9. 10.) 이명으로 석성국(石成國)이라고도 한다. 내북(內北) 이원(泥院) 출신으로 키가 작으나 매우 용맹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어렸을 때 가세가 빈한하여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속리산 중에 의진이 형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업을 버리고 한봉수(韓鳳洙)의 참모장이 되었다. 출전할 때마다 많은 적을 사살하였다. 일병들이 그 를 사로잡으려 하였으나 출입할 때마다 병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어찌할 수 없었다. 1908년 5월 의병장 한봉수, 김규환(金奎煥)과 함께 약 40명을 인솔하고 청주 산외일면 초정동(椒井洞)에서 일인기병 2명이 우편물을 호위하고 오는 것을 확인하 고 좌우의 산기슭에 매복하였다가 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려 석창문이 선..
윤정훈(尹鼎勳)은 1881. 11. 24.~1921. 7. 7. │ 자(字)는 옥현(玉鉉), 호(號)는 국은(菊隱)으로 내북면(內北面) 서지리(西枝里) 168-6번지(현 터골길 33)에 거주하였다. 고종의 국장 장례에 내북면 서지리 대표로 상경하여 참례하고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3・1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후 3・ 1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보은지역에서는 4월에 이르러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8일에 보은지역에 최대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내북면 서지리(西枝里, 터골길)에서 윤정훈(尹鼎勳)과 구열조(具悅祖), 산성리(山城里, 현 보은읍 산성리 잣미길)에서 이용기(李龍基)가 각각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산 위에..
내북면 이원리 석성국묘지옆에 자리하고 있는 의사 윤정훈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의사파평윤공정훈송덕비(義士坡平尹公鼎勳頌德碑)라고 음기되어 있으며 좌우 후면에는 윤정훈의 행적이 기술되어있다. 윤정훈 의시는 일명 용배라고도 한다. 보은군 내북면 서기리에서 출생..
내북면 이원리에 있는 구한말 홍우선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의병아장홍공우선공적비(義兵亞將洪公雨先功績碑)이라고 음기되어 있으며 좌우 후면에는 홍우선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다. 도원리에는 세종의 태를 묻었다고 전해지는 태봉산이 있으며, 옹기 점이 있었다 한다. 마을유래비에는 ‘의병장 한봉수의 아장으로 활동한 홍우선 선생의 의와 충의 마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홍우선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모아 한봉수 의병부대의 아장이 되어 청원, 진천, 괴산, 평택, 문경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고향 도원리에서 서거했다. 1973년 내북면 애향동지회에서 홍우선 선생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다 홍우선은 서기 1884년 8월 22일 본면 도원리에서 출생하였는데 젊어서 부터 강개한 뜻을 품었고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