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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백석정 (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1677년(숙종 3)에 동부주부를 지낸 백석정 신교(白石亭 申灚)가 낭성면 관정리 지담가 바위 위에 세운 정자이다. 1927년 문중에서 중건하고 1987년 보수한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에 쪽마루를 깔고 통난간을 둘렀다. 현재 백석정에는 편액이 두 개만 걸려 있고, 많은 기문과 제영은 고령 신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亭於白石 因以名亭 吾從叔所手刱 從叔少也 負奇氣 有萬里心 俄而倦於世 還四方 事如少游 盖嘗取叱咤者 而溺其竅爲嘯歌 回其駕長風破巨浪者 而理漁釣行募地 得墨之左白石 石臨溪陡 起四五丈 北去沙灘 三百武而近 南望石峰 二里而遙 雖谺側而騁眺遠 後有太古松 輕涼逼而淸陰森然 遂鑿山而通逕 就石上 架而爲亭以綰之 其左爲燠室二楹 不易月而翼然 龍頭簇椽 獅背負檻 丹雘耀日 宛..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충북 문화재자료로 2010년 12월 10일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
현재의 백석정 건물은 신교가 이 주변 경관 중에서 특히 흰 돌(白石)을 유독 좋아하여 1677년 봄에 창건을 하고 이후 1737년 그의 손자인 화은처사가 중수를 하였고 다시 1927년에 공의 7대손이 2차 중수, 1987년에 보수를 한 것으로 사진의 기문비석은 정자의 창건과 중수, 2차 중수 등의 내력을 수록한 비석으로 1986년 고령신씨 중종에서 건립을 하였다. 백석정기의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흰돌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그 이름을 백석정이라 하시니 이 정자는 나의 종숙께서 손수 지으신것이다. 종숙께서는 젊은시절 기이한 기품을 지으셨고 만리심이 있으셨는데 갑자기 세상살이에 싫증이 나시어 사방을 둘러 보시니 마침 소유처럼 경치 좋은곳이 있는지라 대체로 질타당할것을 무릅쓰고 그 풍광에 빠지시어 ..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운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