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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백석정 (1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주 백석정(淸州 白石亭)은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달천으로 흘러가는 감천(甘川) 가에 있다. 남쪽은 청주의 초입에 해당하며 영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어서 많은 인사들이 머물며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이다. ‘백석정’이라는 이름은 정자 앞에 돌출한 흰 바위에서 유래한다. 신교(申灚)[1641~1703]는 일찍이 벼슬을 단념하고 청주 백석정을 세워 여러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신교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관정리 일대는 고령 신씨의 세거지이다. 앞으로 감천이 흐르고 북향하는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정자를 만들고 멀리 영남으로부터 인근 유림들과 시문을 논하던 곳이다. 2010년 12월 10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
날씨도 찬데 뭔 발걸음인가?말은 그리 하는 듯 해도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반가운 듯 조릿대 사이를 휘젓는다. 오늘따라 강물 빛도 더 차가운 듯하네 그려빈 손으로 찾아도 백석정은언제나 불콰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바람이 분다.감천가 물결위로기다림이 흐른다. 2024.12.08.낭성면 백석정.
1677년(숙종 3)에 동부주부를 지낸 백석정 신교(白石亭 申灚)가 낭성면 관정리 지담가 바위 위에 세운 정자이다. 1927년 문중에서 중건하고 1987년 보수한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에 쪽마루를 깔고 통난간을 둘렀다. 현재 백석정에는 편액이 두 개만 걸려 있고, 많은 기문과 제영은 고령 신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亭於白石 因以名亭 吾從叔所手刱 從叔少也 負奇氣 有萬里心 俄而倦於世 還四方 事如少游 盖嘗取叱咤者 而溺其竅爲嘯歌 回其駕長風破巨浪者 而理漁釣行募地 得墨之左白石 石臨溪陡 起四五丈 北去沙灘 三百武而近 南望石峰 二里而遙 雖谺側而騁眺遠 後有太古松 輕涼逼而淸陰森然 遂鑿山而通逕 就石上 架而爲亭以綰之 其左爲燠室二楹 不易月而翼然 龍頭簇椽 獅背負檻 丹雘耀日 宛..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충북 문화재자료로 2010년 12월 10일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