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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소이면 대장리 (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지금은 폐교되어 적막만이 가득한 대장국민학교 교정을 쓸쓸히 바라보는 이순신장군 동상이다. 문화공보부라는 명칭이 나를 먼 기억속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1978년 8월20일 이정순의 증정으로 이 곳 교정에 자리하게 된 이순신장군상. 많은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제막식을 하였을 텐데....그 시절은 어디로 흐르고 지금은 적막만이 교정을 지키고 있다.반공 승공 더이어 멸공까지 냉전시대의 하나의 산물로 치부하기에는 이순신장군상이 주는 의미는 너무 큰것 같다. 화단에 자리했던 금표비가 학교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또한 대장국민학교가 새겨진 대문기둥도 자리하고 있다.
소이면 대장리 지금은 폐교된 대장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후미리석불입니다. 원래 불상은 후미리사지에 있던 불상인데 이 곳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많은 사연이 있는 석불입니다. blog.daum.net/king6113/5591 - 자세한 사항 살펴보기
소이면 대장리 지금은 폐교된 대장초등학교 화단에 방치되어 있는 돌확입니다. 화단에 다른 괴석등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마 민기등에 방치되어 있던 돌확을 초등학교 화단을 조성하며 아이들의 교육용이나 또는 조경 용도로 놓아 놓은것 같습니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돌로 문질러 쓿거나 가는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여기에 보리쌀을 넣고 주먹만한 돌로 돌려가며 바닥을 문질러 대꼈다. 또 마늘이나 고추와 같은 양념을 같은 방법으로 으깨거나, 생선을 뼈 채 가는데도 썼다. 방앗간이 생기기전에 일반 민기에는 하나씩 모두 있었다. 여러가지 모양의 돌확등이 많다.
소이면 대장리 신유효자문옆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대장리 구장을 지낸 신학철의 송덕비입니다. 소이면 대장리 사거리에 있는 대장리구장을 지낸 신학철의 불망비이다. 신학철은 대장리 구장을 18여년간 탈 없이 잘 수행하였기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세웠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구장의 임무를 맡김에 일의처리는 제법도를 따랐고 옛일을 참작하고 새로운 일을 함에 편벽되게 하지 않았으며 공과 사의일은 중립을 지킴에 모든 주민들이 칭찬하였다.십팔년간 업무를 행함에 시작과 끝이 하나같았다. 1936년 6월에 새긴 비석은 신집효자각옆에 자리하고 있다.현재 비석은 1986년 12월에 새로 만들어 세웠다.
신천현(申天鉉)은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로서 1920년 신석균(申石均)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소이국민학교와 충청북도 잠업학교를 졸업했다. 1938년 음성군 소이면 근무를 시작으로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음성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다시 소이면으로 전임(傳任), 1956년 민선 소이면장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