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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오유립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월송정은 청주시 현도면 시목리 새터말 서북쪽에 있는 남산(79m) 정상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강 건너로는 매화낙지형(梅花洛地形)의 명당이 있다는 매방산(梅芳山, 182m)과 마주하고, 절벽 아래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금강이 유유히 흐르며, 오래된 소나무가 시위하듯 정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월송정 주변은 시인 문객들이 팔경시를 읊을 만큼 예로부터 절경으로 유명하였다.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마포귀범(馬浦歸帆, 마포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이란 오유립이 지은 시를 통해 당시의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월송정이 있는 시목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지금도 윗감나무골, 아랫감나무골 등 자연마을이 있다...
노봉서원은 광해군2년(1610)에 오시립(吳時立), 오유립(吳裕立), 오명립(吳名立), 보성오씨 일문과 정렴(鄭磏)의 처갓집 자손인 유흥림(柳興霖)이 송인수와 정렴(鄭磏)을 모시기 위해 구룡산 자락 노봉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광해군7년(1615)에 완공하고 청액소(請額疎)를 올려 효종9년(1658)에 허락을 받아 현종3년(1662) 사액(賜額, 임금이 현판을 내림, 즉 국가 공인 서원)받았다. 1694년(숙종20) 송준길(宋浚吉, 1706년 검담서원으로 옮김),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 1725년(영조1) 권상하(權尙夏)를 추가 배향하였다가 송준길은 부용면 검시에 검담서원을 지어서 빠져 나갔다. 오시립, 송시열, 권상하가 원장을 하였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
노호1리에위치하고 있는 오유립(吳裕立)의 인봉비(印峰碑)입니다. 이 비석은 보성오씨 오유립의 증손 대곤(大坤,1734~?)과 관련이 있다. 마을중심인 느티나무아래 정자옆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안내판이라도 있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굴금증을 풀어주었으면 한다. 오대곤은 정조1년(1777)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시 3등 11위로 입격하였다. 정조10년(1786)에는 식년시 문과시험에 응시하여 갑과(甲科)1위로 장원급제하였다.이후 오대곤의 관직은 전적,주부,감찰사,예병정란,사헌부 장령등을 지냈다. 이 비석은 고종21년(1884)동민들이 마을입구에 터를 올리고 세웠다. 노호리(蘆湖里)는 금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동쪽에는 철도가 지나간다. 자연마을에는 말미개, 매포, 묘기,..
부강면 노호1리의 풍경입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노호리는 금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동쪽에는 철도가 지나간다. 자연마을에는 말미개, 매포, 묘기, 우무실, 가루개가 있다. 말미개는 마을의 산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묘기는 모기라고도 부른다. 우무실은 마을의 산세가 후미지고 무궁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가루개는 금강 가에 갈대가 많아 가루개, 갈호개라고 불린다.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으로 편입되었다.노호리[Noho-ri, 蘆湖里] (두산백과) 보성오씨의 노호리 입항조인 오유립의 묘지와 인봉비 그리고 탕건바위 말바위 두꺼비 바위둥이 있다.
오유립(吳裕立.1575-1658)은 초명이 효립(孝立)이고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이다. 판관 오세양(吳世暘)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오경인(吳景仁)이다. 어려서 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나 광해군시기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으로 돌아왔다.이후에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에 월송정(月松亭)을 지어 이 곳에서 가락을 붙여 시를 즐겨 읊었다.노호리 입향조이다. 신구 비석이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월송처사오공휘유립지묘(月松處士吳公諱裕立之墓)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오유립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그는 오정립 오시립과 더불어 노봉서원을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향풍을 진작시켰으며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증직되였다. 그 후 산세가 좋은 금강가에 위치한 노호리에 정착하였다. 노봉서원은 대원군시절 철폐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