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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초입에 효자문이 자리하고 있다.효자문은 많이 쇠락하여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지붕도 모두 내려 앉았고 정려문의 기둥마저 한쪽으로 기울어 쇠파이프를 이용해 받혀놓은 상태이다. 전오석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원대곡에 있다. 그 후 다시 찾은 효자문은 어느정도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이 되었다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썻어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덕읍 대곡리 전오석효자문(周德邑 大谷里 全五錫孝子門) (tistory.com) 주덕읍 대곡리 전오석효자문(周德邑 大谷里 全五錫孝子門) 오랫만에 대곡리 석포마을을 찾았습니다. 석포마을은 천안전씨들의 집성촌입니다. 마을..
당우리 초입을 들어서며 굴다리를 지나면 넓게 펼쳐진 들판이 보인다.참 풍요로운 마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속으로 밀려든다.산신당 모롱이에 있어 당우리(堂隅里)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또한 ‘자급이 가능한 넓은 들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의연하게 터 잡은 마을’이라고도 해석한다 처음 만나는 사거리가 원당사거리이다. 원당사거리에서 유동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농협창고옆에 비석이 하나 서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조합장전주이공건학씨영세기념비(組合長全州李公建學氏永世紀念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이건학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지방행정가이다. 이건학은 버들골사립학교에 교사로 3년여 근무한 후 고시(考試)에 합격하여 청주도청강습소에서 1년 연수를 마치고 충청북도 중원군 주덕면사무소 권업주임(勸業主任, 지금의 산업계장)..
호암지 축조사업성공기념비이다 비의 전면에는 충주수리조합장영목정일씨사업성공기념비( 忠州水利組合長鈴木政一氏事業成功記念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의 뒷면에는 축조성공기념에 대한 내력이 적혀있다 비의 건립시기는 소화8년(1933년)이라고 적혀있다. 호암지의 건립 경위에 대해..
사리면 사담리 사담면사무소 잔디광장에 자리하고 있는 면장 우현빈의 불망비이다.비의 전면에는 면장우현빈불망비(面長禹顯斌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다비의 건립시기는 기유칠월(己酉七月)이다.기유년이면 서기 1909년 이다. 이곳사리면 사무소 앞 광장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리면장을 지낸 우현빈(禹顯斌), 1936년부터 1941년까지 사리면장을 지낸 이혁노(李赫魯)의 공덕비가 지금까지 보전돼 있습니다.우현빈의 행적에 관하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순응했던 친일인사로 나오고 있습니다.
유희원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