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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주목사 이국헌 (1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그 동안 이채청목사의 비로 알려진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 소이면 비선거리에 당시 후임자로 온 엄찬의 비석과 함께 서있습니다 음성디지털문화대전등에는 조선순조시절의 이채청의 비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두개의 비석이 생김새나 글씨등이 비슷하여 하루 시간..
참 행복하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마음속에 게으름 탓이리라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그 게으름을 이겨내려는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했다. 이렇게 또 이국헌이란 이름의 선정비는 세상에 빛을 본다.나의 조그만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준다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참 아이러니 하게도 엄찬의 공적비와 같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이국헌과 엄찬은 어찌 보면 서로가 철천지 원수일테니 말입니다. 이국헌이 육방관속에 의해 의문을 죽음을 당한 후 이국헌의 아들은 여러방법으로 육방관속을 경옥에 가두는 이야기가 승정원일기에 나와 있습니다이국헌이 죽은후 충주목사 후임자가 엄찬이지요 엄찬이 충주목사로 부임을 하자 일설에 의하면 이국헌의 아들이 엄..
원사락 아랫담 뒷산에 있는 조선조 충주목사를 지낸 연안인 이국헌의 묘지입니다. 산소앞에 서있는 비는 2004년 4월 11일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비문은 “증 통정대부 충주목사 연안이공 국헌지묘(贈 通政大夫 忠州牧使 延安李公 國憲之墓), 배숙부인 전주이씨부(配 淑夫人 全州李氏祔)”라고 새겨져 있다. 망주석은 돌이끼가 돋아난 것으로 보았을 때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위 부분의 조각이 정교하게 잘 남아있다. 이국헌의 묘지에는 상석과 후손들에 의해 근간에 세워진 비석과 망주석2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국헌에 대한 묘 주변의 구전(口傳)에 의하면, 충주 목사(忠州牧使) 재임시(1691∼1692)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청백리(淸白吏)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였는데 6방관속(六房官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
일명 용원저수지라고 불리우는 신덕저수지와 접하고 있는 용담사에 있는 미륵불표지석이다. 많은 답사객들이 용담사에 있는 석불을 보기위해 용담사를 많이 찾는다 용담사 표지석옆에 위치한 미륵불 표지석을 그냥 스치듯 지나는 경우가 많다. 미륵불 표지석을 자세히 보면 누군가의 ..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마애선정비이다 충주를 지나간 관리들의 많은 선정비를 보았지만 마애비로 선정비를 새긴경우는 드물다 수안보면 수회리에 마당바위에 서유돈불망비가 마애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와 비해 이국헌의 마애비는 많은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 45위로 입격하였다. 1676년(숙종 2) 호조정랑(戶曹正郞), 문의현령(文義縣令), 부사과(副司果), 이듬해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683년(숙종 9) 부사직(副司直), 1684년 밀양부사(密陽府使), 상의첨정(尙衣僉正), 무주부사(茂朱府使), 1685년 남양부사(南陽府使), 1687년 훈련주부(訓鍊主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