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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주박물관 (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1978년 예성문화연구회에서 발견하여 충주박물관에 기증한 전면에 태극문양을 중심으로 직경15센티의 8엽연화문을 새기고 그 좌우로는 화려한 당초문을 새겨넣었다. 고려시대때 충주의 별호인 예성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정의]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홍가상의 영정.[개설]홍가상[1649~1740]의 호는 돈암(豚菴), 혹은 시산(詩山)으로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81년(숙종 7) 과거에 급제한 후 1708년(숙종 34)에 병조좌랑, 옥과현감(玉菓縣監), 대구판관을 거쳤다. 1726년(영조 2)에는 세자익위사어(世子翊衛司御)와 시강원(侍講院)을 겸하였고, 3년 뒤 1729년에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使)가 되었다. 또한 1729년에 80살이 넘게 되자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내렸다. 정성을 다해 국가에 봉사하고 외직에 나아가서는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였다고 전한다.[형태 및 구성]「홍가상 영정」은 좌안상(左眼像)이며, 공수 자세로 견본채색(絹本彩色)이고, 관모는 ..
강수(?~ 692?).신라 중기의 유학자, 문장가. 이름은 우두(牛頭).머리 뒷쪽의 뼈가 뿔처럼 솟아 있었다고 한다.글자 그대로, 소대가리.강수란 이름 역시 우두를 총애하던 무열왕이 머리뼈의 모양을 보고 '강수선생'이라 부른 데서 비롯됐다. 스스로 글을 깨우쳐 읽었으며, 당시 신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불교 대신 유학의 길을 택했다.신라 최초의 본격 유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신라의 외교 전반에 걸쳐 활약했다. 한반도 최초의 문장으로 출세한 유학자.설총, 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그들과 같이 6두품 출신으로 신분제도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삼국이 통일된 뒤 외교적인 공을 인정받아 문무왕에게 받은 사찬(沙飡)의 관등이 최고였다. 신분의 벽을 뛰어 넘어 대장..
왕이 권종석장군에게 내린 유서이다.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광서 16년이면 고종27년 경인년 (1890년)에 내린 유서이다. 권종석은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1848년(헌종 14)에 출생하였으며 여덟 살 때 부모를 잃었다. 1863년(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의정부공사관이 되었으며 1883년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1884년 선전관으로 있을 때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이에 동료 4명과 함께 왕을 호종하여 13일간 옷도 벗지 아니하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였다.1885년(고종 22) 포도청종사관, 1886년 훈련원주부, ..
충주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목조나한상이다.나한이란 불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어서 인간과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각각의 표정이나 모습등이 생동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나한신앙은 부처의 10대제자나 16나한, 18나한, 500나한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이들 나한은 삼명(三明)·육신통(六神通)·팔해탈법(八解脫法)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중생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믿어졌다. 이들 나한을 모셔놓은 당우를 나한전(羅漢殿)이라고 하며,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나한들을 봉안한다. 나한전에는 500명의 나한상이 있는 오백나한전과 16나한상을 안치한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나한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불교의식을 나한재(羅漢齋)라고 하며, 왕실과 민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