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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 본문

울고넘는박달재/제천시(堤川市)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1. 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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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한창인 청풍문화재 단지를 찾았다

청풍문화재 단지는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준공되기까지 수몰지역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평의 부지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였다.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 점이지대에 놓임으로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던 곳이다.

 

 

매표구에 비치된 이쁜 팜플렛이다.

이곳 청풍문화재단지는 청소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어

우리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음하고 있습니다.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

지석묘, 문인석, 비석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점이 보관되어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청풍명월이라....

 

 

문화재 단지에서 바라본 청풍대교이다.

문화재 단지 주위로는  2000. 4. 15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주위의 국민연금청풍리조트 호텔및 E.S콘도미니엄의 종합휴양시설을 이용한 체류형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어

그야말로 청풍호반은 보고, 즐기며, 체험하는 종합적인 국제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것이다.

 

 

문화재 단지안에도 가을이 성큼 들어와 있었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길을 따라 걷노라면 피곤이 저 멀리 달아난다.

노오란 은행잎과 단풍이 한창인 청풍문화재 단지이다.

 

 

 지금은 수몰이 된 청풍면에서 옮긴 앴날고가의 물건들이다

소여물통과 디딜방아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보물로 지정되여 있는 석불입상 이다

청풍면 읍리 대광사 입구에 있던 이 불상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석불입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괴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닌다

보물 546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망월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풍대교이다

멋진 설계와 모습이 푸른청풍호수와 어울려 그 풍경이 장관이다.

 

 

금남루이다.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망월산성에서 보이는 청풍문화재단지 원경이다.

문화재 단지옆에 호반을 가로지르는 청풍대교의 모습이 압권이다.

 

 

망월산성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였던 청풍면은 아직도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망월산성도 그 중에 하나이다

 본래 청풍은 고구려의 사열이현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어서는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으로 고쳐져서

내제군으로 개칭한 제천의 영현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사열이현시대에 이 성이 쌓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망월산성 오르는 길에 자리한 연리지.

 

 

옛 청풍관아 건물이였던 금병헌이다.

이 금병헌은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이라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명월정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년(1726)에 다시 옮겨 짓고 이름을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금병헌앞에 마네킹등을 세워 그 시대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많은도움이 된다.

 

 

응청각이다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는데,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보물로 지정되여 관리중인 한벽루이다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원래 위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세우면서 1983년 청풍면 물태리로 옮겨 세웠다.

 

 

청풍면에 소재했던 고인돌등을 수집하여 전시 해놓았다.

 

 

 옛 청풍면에 있었던 각종 공덕비들이다

무엇을 남기려고 저 많은 공덕비를 만들었을까?

혹여나 인간의 욕심이 저리 돌로 만들어진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청풍대교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옛집의 모습은 그대로인데...이곳에 살던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수몰지역에 있었던 민가들을 이리 옮겨놓았다

관리도 잘 되여 있었다.

 

 

연자방아다

말이나 소등의 동물의 힘을 이용하여 돌리던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엣 풍경중에 하나이다.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장독대다.

따스한 햇살아래 자리한 장독대위로 인자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짐은

아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친구가 달려 나올듯한 이웃집 같은 풍경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현실에는 더욱 그리운 장면이다.

 

 

문화재단지 입구에 자리한 팔영루이다.

팔영루는 조선 숙종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지으며 남덕문 이라고 하였다 

고종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중수하였다. 팔영루는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북측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성누문 답게 홍예를 쌓은 높은 대 위에 우뚝 서 있다.

 

많은 볼거리와 더불어 잘 구비되여있는 편의시설등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주위에 먹거리와 식당등을 활성화 한다면 스쳐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머물다 가는 체류형 관광지로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