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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검승리 함양박씨정효각(槐山邑 檢承里 咸陽朴氏旌孝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괴산읍 검승리 함양박씨정효각(槐山邑 檢承里 咸陽朴氏旌孝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4. 15. 17:16

 

이 정려각은 효자 박상진(朴商鎭)의 정려로 고종(高宗) 28년(1891)에 세워진 것이다.
박상진은 애한당(愛閑堂) 박지겸(朴知謙)의 9대 손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품팔이로 생활하면서도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친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회생케 하였다. 부친이 별세하자 3년상을 마쳤으며, 나이 85세에 이르러서도 부모의 말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고종 28년에 정려되고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정효각 안에는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朴商鎭之門” 이란 편액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咸陽朴氏旌孝閣」이란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믿거나 말거나다.

찾고나니 이 허탈감이란?

몇번이고 찾으려던곳인데 지나가다 눈에 띠니 이게 뭔 조화인가?

애한정밑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한마디만 있었어도.....

애한정과 더불어 효자각 옆으로 괴산 향토자료관이 공사중에 있다.

좋은 향토전시관으로 태여 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동몽교관은 조선 시대에 서울의 사학(四學)과 각 지방에서 학동들을 가르치던 종9품의 관직. 사과(司果) 이하의 체아직을 받았으며, 9백일을 근무하면 6품으로 승급하였음. 이조와 예조에서 함께 의논하여 천거하였으며, 한 달에 3번씩 예조 당상관들이 모여 학동들의 실력을 테스트한 후 이를 고과에 반영하였음. 그러나 실제로 동몽교관 제도는 유명무실화했으며, 영조 연간에는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임금이 직접 교관들이 가르친 학동들을 불러다놓고 강독을 실시하기도 하였음. [참고어] 동몽훈도(童蒙訓導).

 

조봉대부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종4품 상계는 조산대부(朝散大夫), 하계는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정하여져

그대로『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종4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경력·첨정·서윤·부응교·교감·제검·편수관·좌익선·우익선·부호군·군문파총(軍門把摠)·군수·동첨절제사·병마만호·수군만호 등이 있다. →문산계


 

 

박상진(朴商鎭)
박상진의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박세무(朴世茂)의 11대손이며 애한당(愛閒堂) 박지겸(朴知謙)의 9대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품팔이로 근근이 생활하면서도 부모를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도 계속 술을 올렸다. 뒤에 아버지가 늙어 병으로 눕게 되었을 때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 지성으로 간병하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회생시켰다.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피눈물로 3년 상을 마쳤으며, 그의 나이 85세에 이르러서도 부모의 말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그의 효성이 예조에 보고되어 1891년(고종 28) 정려되고,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그의 정려문은 괴산읍 검승리에 세워졌다.

[참고문헌】 『괴산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