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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면 봉황리 능동(可金面 鳳凰里 陵洞 ) 본문
봉황리 마을자랑비를 보면서 능암마을쪽으로 가다보면 능암교를 지난다
능암교를 지나며 1944년 일제치하에서 맞은 갑신년 대홍수때 죽은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서있는것이 보인다.
산자락으로 에쁘게 자리한 곳이 봉황리이다
마을초입에는 봉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봉황사는 조선시대 지방 유림들이 선대 유현에 대해 향사하기 위해 향현사와 같은 성격의 사당이다.
동네에서는 그냥 김해김씨 문중의 재실이라고도 이야기를 한다.
마을명칭인 봉황리는 1914년 주변에 있는 봉황산과 봉황내에서 이름을 따 봉황리라는 법정리 명칭이 만들어졌다.
원래의 봉황리는 봉황리 앞을 흐르는 냇가를 중심으로 동네가 형성되여 있었는데
갑신년 대홍수를 맞으며 동네가 지대가 높은 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1898년의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보면 가흥면은 상동, 중동, 부도, 장미, 능암, 원동, 형천의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능암이 지금 봉황리 지역을 말한다.
그리고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총람』에는 가흥면이 형천리, 부도동, 장미리, 상동, 중동, 신대리, 원동, 능암리, 내동, 팔송리의 10개리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능암리와 내동이 나중에 봉황리가 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동과 능암리를 중심으로 팔송리 일부, 복성면 죽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황리가 만들어졌고 가금면에 속하게 되었다.
봉황리는 남한강 남쪽 봉황내를 따라 남북으로 분포되어 있다. 봉황리 서쪽에는 무쇠봉[370.8m]이,
남쪽에는 을궁산[394m]이 있어 서쪽과 남쪽이 높고 동쪽과 북쪽이 낮은 편이다.
봉황리는 삼국시대 때 북쪽에서 한강을 따라 올라온 배나 사람이 충주로 들어가는 지름길에 위치했다. 이 길은 봉황내를 따라 잣고개를 넘어 용전리 입석마을로 이어진다. 그러한 루트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이 봉황리에 있는 마애불과 입석마을에 있는 중원 고구려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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