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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대곡리 전오석효자문(周德邑 大谷里 全五錫孝子門) 본문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초입에 효자문이 자리하고 있다.효자문은 많이 쇠락하여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지붕도 모두 내려 앉았고 정려문의 기둥마저 한쪽으로 기울어 쇠파이프를 이용해 받혀놓은 상태이다.
전오석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원대곡에 있다.
그 후 다시 찾은 효자문은 어느정도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이 되었다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썻어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덕읍 대곡리 전오석효자문(周德邑 大谷里 全五錫孝子門) (tistory.com)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라탕을 먹고 싶다고 하여서, 얼어붙은 냇가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빌었더니 갑자기 자라가 튀어나와 잡아서 달여 드렸다. 전오석의 정성스러운 봉양으로 부모가 90세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효자문의 이야기를 보면 꿩이 품으로 날라들고 잉어가 얼음을 뚫고 올라오고 한겨울에 딸기등을 채취하는 등 어찌보면 현실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그 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면 조금은 무리릴까?
현판에 써있는 행당와(杏塘窩)라는 글자가 눈에 띤다.살구나무와 못이 있는 동네라는 뜻일까?
柳塘春水漫花塢夕陽遲(유당춘수만화오석양지) 버들나무 연못에 봄 물은 넘치고, 꽃동산에 저녁 볕은 더딤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全五錫字子謙己卯生 英廟朝武科 宣傳官外莅 通政大夫行居昌都護府使兼晋州鎭營兵馬僉節制使 遂安濟州等府 自在髺齡 孝誠出天 親患危劇時 當隆冬與浴致齊 處禱靈異有 驗親候漸差允病之餘 忽思鰲湯時 當永合無處求得 卽往川邊上下泣祝 忽有一大鰲躍出於灘下不永之處 卽捕而歸以接食味 乃其出宰兩邑粗展 專誠之養父母 但享九十 其孝行如是一鄕章甫 累次呈營 官谷山 公十二世孫 上之二年庚戌正月 日命旌閭
효성이 왕에게 알려져 1850년(철종 1)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문은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있다.
전오석 효자문은 빠른시일내에 보수 관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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