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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면 가곡리 은진임씨 효열문(陽山面 柯谷里 恩津林氏 孝烈門) 본문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근간을 이루던 유교정치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것이 충과 효의 정신이였다.
또한 가문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충신과 효자나 열녀가 양산되지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양산면 가곡리 농협창고뒤에 위치한 이 정문은 인천인인 이집과 그의 처인 은진임씨의 효와 열을 기리기 위해 고종때 세운 정문이다.
정문의 관리상태는 양호하며 단청등 효열문을 깨끗히 보수하였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43 호 이 효열문은 이집(李集)의 효행과 그의 부인 은진임씨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고종 22년(1885)에 세웠다. 이 집의 본관은 인천, 자는 대성, 호는 죽전(竹田)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효행이 뛰어나 숙종 때 생원(生員)에 올랐다. 임씨는 시예(詩禮)를 잘하였고, 용모가 뛰어났으며,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는데,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고 나서 혼인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 입고 자결하였다. 목조 기와집으로 한칸의 맞배집이다.
가곡리(柯谷里-가지골,각골,갓골,지동)는
본래 양산현 지역으로 옥천군(沃川郡) 양내면(陽內面)에 속했다가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비봉산(飛鳳山) 동쪽 날 가지에 있어 가지골, 줄여서 갓골 또는 지동(枝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의희동(義希洞)을 병합하여 가곡리라 해서 영동군 양산면에 편입되었다. 1984년 1월 15일 가곡리 1구, 2구, 3구로 분리하였다. 가곡리 1구는 소재지 마을이고, 2구는 소재지 서쪽 마을로 상촌과 남산을 포함하며, 3구는 의희마을으로 남쪽 700m 지점에 있는 마을이 있다. 양산면의 중심지로서 면사무소, 경찰 파출소, 우체국, 학교, 시장 등이 있다. 비봉산성(飛鳳山城)은 갓골 뒤 서쪽에 우뚝 솟은 해발 481m의 비봉산 정상부를 감싸고 동서로 길이 약 145m, 둘레는 약 300m로 추정된 신라 때의 산성이나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이리사지(伊利寺址)는 의희마을 남서쪽 언덕 비봉산 동쪽 기슭에 있었는데 3층석탑(三層石塔)은 현 양산초등학교에 세워 놓고 있으며, 또한 의희마을 입구 가곡리(柯谷里) 고가(古家)는 1917년에 이전한 건물로 민속문화재 147호(1985년 12월 28일)로 지정받고 있다. 또한 효자(孝子) 이집(李集) 정문(旌門)이 있으며, 교회 뒤에 인천 이씨(仁川 李氏) 재각(齋閣)과 가곡리 409번지에도 인천 이씨 재실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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