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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면 산덕리 태실비(文義面 山德里 胎室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문의면 산덕리 태실비(文義面 山德里 胎室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6. 2. 06:54

 

산덕리 태실은 1993년 6월 4일 충청북도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태실은 왕가(王家)에 출산이 있을 때 그 출생아의 태(胎)를 묻던 석실(石室)로, 태봉(胎封)이라고도 한다.

이곳 산 이름이 태봉(胎峰)이 된 것은 여기에 태실이 있기 때문이다.

 

 

 

 

산덕리 태실은 산덕리 상산마을 진입로에서 보이는 작은동산에 있다.

산덕리 마을표지석에서 보이는 앞에 보이는 작은동산이 태봉이다.

 

상산으로 진입을 하면서 첫번째 길에서 좌회전을 하여 작은동산을 끼고 진입하면 태실비로 오르는 길을 만날수 있다.

 

 

 

길로 진입하면 폐가를 만날수있다

차는 이 곳에 주차하면 된다. 농사철이기때문에 농기계등과 만날수 있기 때문에 주차를 잘 시켜야 한다.

폐가 못미쳐 산으로 오르는 작은길이 있다

이 길을 찾지 못하면 조금 고생하는 길로 올라야 한다 잡목이 무성한 길아닌 길.....

태실로 오르는 길에 작은 팻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그러기전에 내가 하나 만들어서 설치해 놓을까...?

 

 

태봉에서 바라보이는 상산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손의 아기가 태어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임시로 설치하여 안태사(安胎使)로 하여금 명당자리를 찾아 태를 묻도록 하였다.

 

 

 

 

 

 

이 태실의 주인공과 건립시기를 명기한 태실비(胎室碑)는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비신(碑身)과 비수(碑首)는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비수 상단의 연봉형(連峰形) 장식은 없어졌다. 비문(碑文)은 마모가 심하나 ‘만력십육년무자(萬歷十六年戊子)’에 세운 ‘아지씨(阿只氏)’의 태실이라는 명문이 판독되어, 1588년(선조 21)에 태어난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의 태실로 추정된다

 

 

태실과 태실비는 1928년경에 도굴된 후 유실되었던 것을 1994년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에 의하여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인성군은 조선 중기의 왕자이다. 이름은 공(珙). 호는 백인당(百忍堂), 시호는 효민(孝愍). 선조의 일곱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정빈(靜嬪) 민씨(閔氏)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선조가 특히 사랑하였으며 공부를 시작하자 학업이 일취월장하였다. 12세에 인성군으로 책봉되었으며, 장성하여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도제조와 종친부의 유사(有司)를 겸직하였다.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관대하면서도 엄격하였으므로 관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광해군의 시기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가는 것을 보고 이이첨(李爾瞻) 등이 사형수를 사주하여 무고하니, 대궐 문밖에 자리를 깔고 처분을 기다리기를 며칠씩 하다가 울분한 마음에 병이 들어 3년간이나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왕은 숙부의 예로써 대우하였으나,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고 그때 잡혀 들어온 자들이 모두 혐의를 뒤집어 씌웠으므로 왕도 할 수 없이 간성으로 귀양보내었다.

후에 원주로 옮겼다가 어머니 민씨의 병이 위독하므로 관대한 처분을 받고 돌아왔다. 그러나 1628년 유효립(柳孝立) 등이 대북파의 잔당을 규합하여 모반을 기도할 때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다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자살을 강요받고 죽었다. 1637년에 복관되었다.

 

 

 

인성군의 묘는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 되였으며 소재지는 의정부시 금오동 산 23-1번지이다. 묘 주위에는 곡담을 두르고, 묘 하단부에는 호석을 설치했으며,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 그 좌우에는 망주석, 석인상, 문인상이 서 있다. 또 하나의 묘비는 숙종 7년(1681)에 건립된 것으로 장방형 대석과 객석을 갖추었고, 4면에 걸쳐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부인 해평윤씨와 합장된 이 묘의 직경은 4.9m, 높이는 2.5m이다.

 

 

 

 

 

태실은 석함과 뚜껑돌을 별도로 만든 원통형의 태항아리에 안치하고 봉분을 조성하였다.

석함은 지름 118㎝, 높이 76㎝로 그 안에는 지름 64㎝, 깊이 58㎝의 내실을 마련하였으며, 뚜껑돌은 지름 119㎝, 높이 63㎝의 반원형이다.

 

[산덕리에 있는 인성군의 태함-문화재청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