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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오창읍 농소리 충정영당(梧倉邑 農所里 忠靖影堂) 본문
오창읍 농소리를 찾는 시간이 오후 4시경 정도일까?
아직은 해가 남았는데도 조바심에 마음은 바쁘다. 주변으로는 많은 개발이 되여가고 이제는 동네 한켠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을 사당에는
이제는 돌보는 이없이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파손된채로 찾는이 없이 겨울바람만 스산하다.
사당 옆으로는 건축폐기물등이 쌓여 있고 조립식 담장도 무너지고 사당의 군데군데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옛것이 천대 받는 시대가 되였다고 해도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름하여 충정영당이라고 한다. 1942년에 마천목(馬天牧, 1358~1431)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영당이다. 영정은 좌명공신상(佐命功臣像)의 모사본을 1935년 전라남도 곡성의 장흥영당(長興影堂)에서 다시 모사한 것이다.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80㎝, 세로 120㎝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다. 영정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영당은 1942년에 세우고 1982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을, 좌우에 협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다. 마당 앞에는 일각 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마천목은 1358(공민왕 7)∼1431(세종 13).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그리고 회령군(會寧君)에 책봉되어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승진하였다. 그에게 내려진 공신 녹권과 교서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마동욱의 고향이야기에서 옮겨왔습니다]
충정영당에 있는 영정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위의 사진은 장흥을 지키는 마동욱의 고향이야기에서 옮겨왔습니다
지금의 영당은 1942년에 세우고 1982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협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다.
마당 앞에 일각문을 세우고 주변에는 담장을 둘렀다. 그리고 마당에는 1945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돌보는 이 없는 장흥마씨 사당은 흐르는 세월속에 몸을 뉘이고 있다.
처마끝과 들보등이 많이 낡아 낙후되여 빠른 보수의 손길을 요하고 있다
외로운 사당마당 한켠에는 마천목의 신도비만이 쓸쓸히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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